꿈속에서의 비상경보
아버지... 들리세요?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햇살이 비치는 맑은 하늘.
이도현은 경량항공기를 조종하며 고흥의 드넓은 들판 위를 비행하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흔들림이 기체를 덮쳤다. 조종석의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등의 깜빡임이 점점 더 강렬해지며 그의 머릿속까지 울리는 듯했다. 도현의 손끝에서 조종간의 떨림 또한 강해졌다.
"엔진 경고등?"
그 경보는 단순한 기계의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늘의 시험 같았다.
그는 침착하게 통신기를 잡았다.
"아버지, 들리세요?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지상에서 들려오는 아버지 이재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단호했다.
"들린다, 도현아. 침착해. Mixture idle cut off부터 하자."
그의 손끝은 이미 땀으로 젖어있었고, 심장은 쉴 틈 없이 요동쳤다. 머릿속으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도현은 조작을 시작하며 대답했다.
"Mixture idle cut off 완료. 그다음은요?"
"Engine Fire 절차 바로 시작해. Fuel Shutoff valve OFF, Pump OFF, Battery Master도 OFF로 전환."
재현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그다음 속도를 조절하며 비상 착륙 자세로 들어가."
도현은 모든 절차를 완료했지만, 비행기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아날로그식 고도계의 바늘은 마치 그를 절망으로 몰아놓으려는 듯 반시계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그래도 안정이 안 돼요!"
도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Flap 내려서 최대한 속도를 줄여! 땅에 닿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
재현의 목소리에는 애타는 조언이 담겨 있었지만, 도현은 어지럽게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
도현은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땅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비행기에 그저 자신의 몸을 항공기에 순응하고 있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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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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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흐르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 그의 시선을 잡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전자시계.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 내가 Celestial Wings Academy에 오다니..."
기숙사는 단출했다. 하얀 벽, 작은 책상, 그리고 삐걱이는 침대, 창밖으로는 희미한 달빛이 드리워졌다. 도현에게 이곳은 낯설기만 하다.
그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낯선 땅, 낯선 하늘. 아버지가 없는 이곳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한국은 지금 몇 시일까..."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아버지한테 전화해야겠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아? 웬일이냐, 이 시간에."
재현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도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 저예요. 잘 도착했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기숙사로 바로 와버렸는데... 이제야 전화드리네요. 죄송해요."
재현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늦었어도 연락해 줘서 고맙다. 기숙사는 어때? 낯설지 않니?"
도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솔직히 말했다.
"솔직히, 조금 낯설어요. 그리고... 미국 사람들이랑 제가 많이 다르게 느껴져요. 처음엔 다들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불편했어요."
"그건 처음이라 그런 거야."
재현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도현아, 네가 하늘에서 비행기를 다룰 때처럼, 차근차근 익히면 돼. 네가 여기까지 온 것도 네가 하늘을 사랑했기 때문이잖아. 미국 하늘도, 한국 하늘도 모두 같은 하늘이란다."
도현은 아버지의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이 여전히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고흥의 하늘 아래서 듣던 목소리가 지금 이 낯선 땅에서도 그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 정말 괜찮을까요?'
그는 속으로 몇 번이고 물음을 삼키며, 자신의 두려움이 목소리에 묻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네, 아버지 말씀처럼 해볼게요."
전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 누운 도현은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낯선 환경, 새로운 도전. 그는 침대 옆 작은 책상 위에 있는 스탠드를 켜고 다이어리에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갔다.
'미국에서의 첫날, 아버지의 목소리로 안도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내 날개로 하늘을 넘어야 한다.'
펜 끝이 멈추는 순간, 그의 두려움의 감정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도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첫 미국 새벽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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