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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진 Apr 17. 2018

그런 게 바로 부부가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식성'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


 언젠가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주부가 올린 사연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남편이 평소엔 자기가 해주는 음식들을 잘 먹는데, 꼭 주말에는 아무리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있어도 라면이나 계란 프라이 따위만 먹곤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혹여 자신의 요리가 맛이 없어서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속이 상한다며, 이유가 무엇일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댓글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해답은 아내가 후에 덧붙인 이야기 속에 있었다. 사실 남편은 유년 시절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집에 먹을 것이 없어 동생과 라면을 끓여먹기 일쑤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자취 생활을 전전하느라 먹을 만한 것이라곤 기껏해야 계란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아내는 어머니가 요리를 잘 하셨던 덕에 외식보다는 늘 집밥을 먹으며 자라왔고, 좀처럼 대충 끼니를 때우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굳이 라면이며 계란을 찾아 먹는 남편의 식성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보고 생각해보니, 나의 아버지도 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음식을 해 놓으셔도, 어째서인지 굳이 간장과 소금 없이 구운 김, 거기에 가끔 계란 프라이 정도나 얹어서 식사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께 그 까닭을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위 사연과 비슷하게도 아버지 역시 유년 시절을 워낙 가난하고 쓸쓸하게 보내셨던 탓에, 그런 음식으로나마 간신히 배를 채우는 것이 고작이었던 터라 그게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었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의 식성이라는 것에는 곧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애달픔이라거나, 기쁨과 같은 흘러가버린 시간과 감정들의 잔향이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위 사연에서 남편이 먹던 라면이나 계란 프라이에도, 유년 시절의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녹아있었으리라.

 

 결국 이 이야기는 아내가 그런 남편의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어, 앞으로는 남편의 식성이해해주어야겠다며 훈훈하게 매듭을 짓는다. 아마도 이때 아내의 '이해'에는, 단순히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인지하고 수용한다는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추억과 인생을 오롯이 보듬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사랑이며, 부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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