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블릭 에너미'
그는 멋있다.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지는 굴욕적인 순간에도 그는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는 팬 서비스도 빼놓지 않는다.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FBI 사무실을 유유히 홀로 가로지르는 스릴도 만끽한다.
이렇게 온갖 폼은 다 잡고 다니는 이 남자. 그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갱스터 ‘존 딜린저(조니 뎁)’다. 영화 ‘퍼블릭 에너미’는 전설의 은행 강도 존 딜린저가 경찰에 의해 사살되기 전 몇 개월 동안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갱스터를 다뤘다는 점 말고도 영화 ‘퍼블릭 에너미’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여럿 있다. 품격 있는 갱스터 영화 ‘히트’를 만들었던 마이클 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또한 존 딜린저 역할을 조니 뎁이 맡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소재와 할리우드의 거물급 인사들이 뭉쳤으니 이 여름 전세계 극장가를 주름 잡을 초대형 갱스터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정작 완성된 ‘퍼블릭 에너미’는 무척 차분하고 덤덤하게 서술된 기록영화에 가까웠다.
영화는 1930년대 미국을 충실하게 고증했다. 뿐만 아니라 존 딜린저가 수감됐던 감옥, FBI 사무실 등을 당시 자료화면에 기초해서 거의 똑같이 만드는 성실함을 보였다. 존 딜린저 일당이 은행을 터는 모습이나 도주, 탈옥하는 장면 등 충분히 역동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장면조차 영화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이클 만 감독은 영화 ‘히트’에서 그 유명한 노상 총격신을 만들어냈는데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존 딜린저 일당과 FBI 사이의 총격신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도 있다. 마이클 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영화적 재미’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톤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다. 홀로 영화적 캐릭터 만들기에 고군분투하는 인물은 존 딜린저 뿐이다. 은행 돈은 털면서 고객의 푼돈은 넣어두라는 아량을 베푼다. 인질로 데려갔던 여인을 한길에 세워두면서도 추울지 모른다며 값비싼 코트를 걸쳐주는 친절도 베푼다.
그의 ‘영화놀이’는 여인 ‘빌리 프리쳇(마리온 꼬띨라르 분)’에게 보여주는 순정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경찰에 쫓기는 존의 안위를 걱정하는 빌리에게 존은 ‘당신의 품에서 늙어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아량과 친절은 ‘공공의 적’이 아닌 ‘의적’으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 하기 위한 수단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존 딜린저는 진실로 멜로 영화 속의 폼 나는 주인공처럼 멋진 인생을 꿈 꿨던 것 같다.
그가 죽기 몇 시간 전 봤다는 ‘맨해튼 멜로드라마’. 클라크 케이블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를 보며 존 딜린저는 내내 회심의 미소를 띄운다. 멋진 남자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한다. 자신도 저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존 딜린저는 굳게 믿었을 것이다.
이 단호한 서사 안에서 유일하게 격정적이있던 존 딜린저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바다 한복판에 홀로 떠 있는 섬과도 같았다. 존 딜린저가 남긴 유언은 감미로운 재즈 음악의 제목이었다. 이로써 그의 짧은 인생은 정말로 한편의 영화같이 마무리 된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영화 같은 삶. 너무 외롭고, 그래서 무척 낭만적이다.
(2009년 8월 작성)
제목 : 퍼블릭 에너미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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