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는 나무 없는 산에 묘목을 심는다

영화 '나무 없는 산'

by 무덤덤

아이의 큰 두 눈이 엄마의 표정을 부단히 살핀다. 어른들을 비출 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는 언제나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본다. 앵글에 가득한 어른들의 얼굴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카메라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니까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어른들의 얼굴은 늘 피곤하고 지쳐있다.


일상에 지쳐 피곤에 절은 어른들의 맥 없는 표정, 게다가 자신을 차분히 쳐다봐 주지도 않는 그 얼굴을 보는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차마 어째서 자기를 봐주지 않느냐고 떼를 쓰지도 못한다. 한없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6살 ‘진(김희연)’과 동생 ‘빈(김성희)’은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점점 핏기가 가시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진과 빈은 하루 하루 좌불안석이다. 엄마의 얼굴이 왜 점점 어두워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다.


공포는 결국 현실이 된다. 엄마는 커다란 돼지저금통을 진과 빈이에게 안기며 이 안을 동전으로 가득 채우는 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메뚜기를 구워 팔아가며, 100원짜리 동전을 1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가며 돼지저금통을 채웠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깔끔했던 진이의 체육복이 점점 더러워지고 진이는 거짓말쟁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차츰 차츰 접어간다.


영화 ‘나무 없는 산’은 자매의 혹독한 유년기를 다룬다. 실제 어린 시절 엄마 없이 고모집과 할머니집에서 자란 김소영 감독은 자신의 기억을 살려 진이의 시선에 실었다. 그 시선의 정체는 한기와 공포다. 엄마가 없는 겨울, 메뚜기 잡으러 고모네 동네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진이와 빈이가 그렇게 추워 보일 수 없다. 너덜너덜해진 문풍지 사이로 사정없이 드나드는 웃풍을 맞는 듯한 매서운 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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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선에 맞춰진 낮은 앵글, 상대방의 표정을 끊임없이 살피는 그 시선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표현됐다. 어른들의 지친 얼굴들, 불안과 그리움으로 달뜬 자매의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하다. 시종일관 흔들리며 힘겨워 하는 이 시선들은 하루 아침에 보호자를 잃고 갈팡질팡하는 자매의 막막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어릴 적 엄마와 꼭 붙잡은 손을 놓치고 길을 잃어 낯선 거리에서 울며 길을 헤매던 유년 시절의, 잠시 잊고 있었던 공포를 깨우는 듯하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은 외가댁에 맡겨진 진이와 빈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아궁이 불에 몸을 녹이기 시작하면서 다행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시선이 다소나마 안정되지 못했다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두 아이, 특히 맏이인 진이가 느꼈던 한기와 공포는 관객들과 꽤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득 채운 돼지저금통을 외할머니에게 선물하는 진이와 빈이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외할머니의 조건 없는 따스함이 마침내 자매를 안심시킨 것이다.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자매의 미래가 순탄치만은 않을 테지만 진이와 빈이는 엄마가 없는 ‘나무 없는 산’에 스스로 묘목 하나를 막 심기 시작했다. 참 기특한 아이들이다.

(2009년 8월 작성)


제목 : 나무 없는 산 (2009,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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