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위크'
영화 '원 위크'의 주인공 '벤(조슈아 잭슨)'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직업이 있고 곧 결혼할 사랑스러운 약혼녀가 있다. 벤은 사람 많은 곳에서는 코도 파지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으며 튀지 않게, 모나지 않게 서른 해를 살았다. 그는 지금까지 평범하고 무난한 썩 괜찮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도 꽤 괜찮을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따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조금 신경질적이지만 가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도 자신처럼 썩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삶.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통의 삶’이 대체로 이러한 과정들로 이뤄진다.
하지만 살다 보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이러한 보통의 코스를 착실히 밟아나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된다. 이에는 적지 않은 인내심과 성실함이 필요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타락의 유혹을 견딜 줄도 알아야 하며 안정과 넉넉함을 담보하지 못하는 무모한 꿈은 과감히 접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신경하게 가리키는 ‘보통의 삶’은 꽤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야 얻어진다. 그래서 보통으로 사는 건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위대한 일이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꽤 괜찮은 인생을 기약했던 벤의 삶에 최대의 변수가 찾아왔다. 나이 서른에 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2년. 벤 앞에 예정된 인생의 수순들은 이제 다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필연적으로 느껴졌던 삶의 과정들이 헝클어져버린 지금 벤은 이제부터 모든 결정을 우연에 맡기기로 한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우연히 눈에 띈 중고 오토바이를 샀고, 테이크 아웃 커피 잔에 쓰여진 문구를 우연히 발견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젊은이여, 서쪽으로 가라'. 그래서 벤은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캐나다의 유명한 랜드마크를 하나하나 찍으면서 벤은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 순간의 기억을 저장해둔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아니 보려 하지 않았던 산과 들, 바다 그리고 사람들. 우발적인 일주일 동안의 일탈 속에는 벤의 사색과 사진, 그리고 음악이 가득하다. 그렇게 일주일은 벤의 내면에 기억으로 남는다.
살면 살수록 세월에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기억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전적으로 ‘뇌세포의 점진적 노쇠화’ 탓일까. 혹시 나이가 들면서 기억으로 남겨야 할 만큼 특별한 사건이 점점 없어진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꼬마일 때야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게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뿐이었을 테니 하나 하나 기억해 두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인가. 그렇지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른 해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면 이미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이란 거의 없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보통의 삶’이라도 기억할 거리가 적다면 그 삶이 꽤 괜찮기는 해도 훗날 되돌아봤을 때 무척 허무하지 않을까. 그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매일 같은 곳으로 향하고 늘 하던 일을 하고 항상 보던 것을 보는 하루하루. 삶의 ‘디테일’이 흐려지고 삶의 거대한 형체가 하나 우뚝 서 남게 될 것이다.
영화 속 캐나다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거대한 포토 모자이크가 나온다. 무수히 많은 사진들을 적절히 배열해서 가히 엄청나게 커다란 형상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그 커다란 형상은 마치 꽤 괜찮은 인생의 완성형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한번 쓱 훑어보니 기특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왠지 막연하다. 벤은 그 거대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사진들을 한장 한장 유심히 본다. 사소하지만 기억이 담긴 순간들.
기억의 순간들을 많이 붙잡아놓자. 그것으로 이뤄질 커다란 형상은 풍요로운 인상과 감성으로 더 훌륭하게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기억을 붙잡는 방법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좋겠고, 그 순간에 음악을 흐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악은 타임머신처럼 때때로 우리를 사춘기 시절 ‘워크맨’에 테이프를 갈아 끼우던 작은 방으로 순식간에 순간이동 시켜주기도 하니까.
벤은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성실하고 무던하게 암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벤의 ‘보통의 삶’이 될 것이다. 대신 이번에는 사진과 음악, 그리고 그의 사색으로 그 보통의 삶이 더욱 빛이 나기를 바란다. (2009년 9월 작성)
제목 : 원위크 (2009,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