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기억이 있으니 인간이었네

영화 '더 문'

by 무덤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 달 표면에 기지 하나가 상주하고 있다. 달 기지 ‘사랑(SARANG)’은 지구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헬륨3를 채굴하는 곳이다. 고용 직원은 단 한명. ‘샘(샘 록웰)’은 이 기지에서 일하는 그 단 한명의 계약직원이고 사랑 기지 소속 직원을 정성껏 보살피도록 짜여진 프로그램 ‘거티(목소리:케빈 스페이시)’의 건조무미한 목소리가 샘의 유일한 말동무다.


위성장치 고장으로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지도 오래. 아내와 어린 딸의 영상 메일은 외로움에 사무친 샘을 어루만지는,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다. 이제 2주 후면 샘은 지구로 귀환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딸의 사진을 계기판에 붙여놓고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하던 도중 샘은 이상한 환영을 본 후 사고를 내고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샘은 기지 안 치료실에 얌전히 누워있다. 다소 황망한 정신과 부자연스러운 몸을 추스르고 기지 밖으로 나간 샘은 또 다른 샘이 망가진 작업차 안에서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이렇게 샘과 또 다른 샘이 한 공간에서 동거하는, 괴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마치 과거와 미래가 한 곳에서 만난 듯한 착각이 든다. 영화 ‘더 문’은 가까운 미래, 자원을 채굴하는 달 기지 ‘사랑’에서의 일상으로 잔잔하게 시작해 이렇게 두 명의 샘을 한 공간 안에 있게 함으로써 미스터리 SF 영화로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한다.


샘과 다른 샘은 서로가 서로를 ‘클론(복제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자기가 클론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두 ‘샘’들은 이 엄청난 진실의 문턱에서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다. 아마 영화의 배경이 된 가까운 미래에서는 복제인간 개념이 지금보다는 더 친숙했던 모양이다.


영화의 미스터리한 무드는 거티의 순순한 고백으로 싱겁게 마무리된다. 건조무미한 톤으로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거티는 샘의 비밀을 브리핑한다. 그렇다. 샘은 복제인간이 맞다. ‘사랑’ 기지에 있는 두 샘 모두 복제인간이며 아마도 수백 개의 샘이 이 기지 안에 더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복제품’ 샘의 수명은 3년이고 계약기간을 채워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폐기된다. 혹시나 했던, 차마 알기를 두려워 했던 ‘진실’이 확인된 후 이제 두 ‘샘’은 어찌해야 할까. 의외로 그들은 덤덤했다. 어쩌면 그들은 다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설핏 느꼈는지도 모른다.


계약기간이 2주 남았던 샘은 남은 시간이 계약기간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는 시간이란 걸 알게 됐다. 곧 꼼짝없이 폐기될 순간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이 견딜 수 없는 것은 두 명의 ‘샘’이 시한부 인생이라 곧 죽기 때문이 아니다. 달에 있는 동안 외로움과 무료함을 버티게 해준 신과 같은 존재, 그러니까 아내와 딸이 더 이상 자신만의 아내와 자신만의 딸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샘이 클론이었고 3년 후 폐기된다는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딸의 진짜 남편이자 아버지인 샘이 이미 지구에 쭉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이다. 그 지점에서 샘은 가장 절망하고 삶의 모든 의욕을 놓아버린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그가 뜨거운 심장으로 펄떡이는 생명체라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엮인 추억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더 문’이 복제인간 이슈를 다룬 그 어떤 다른 영화보다 ‘사람됨’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형, 똑같은 장기를 가지고 배양되는 복제인간. 생물학적 신체뿐 아니라 기억과 추억까지 복제하는 건 단호하게 비윤리적이다. 그 강력한 근거를 영화는 제시한다. (2009년 11월 작성)


제목 : 더 문 (2009년, 영국)

OTT :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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