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해프닝이었다가 운명이었다가

영화 '500일의 썸머'

by 무덤덤

사랑을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관찰자가 솔로일 때의 관점과 커플일 때의 관점. 약간 억지이긴 하지만 이걸 조금 유식한 말로 바꾸면 전자의 관점은 거시적이고 후자의 그것은 미시적이다.


솔로일 때 사랑이란, 별 특징 없는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집단 서식하는 숲쯤 된다. 나무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숲의 모양새도 그저 평범할 뿐이다. 새삼 아름답거나 감격하여 울컥하지도 않는다.


커플일 때 사랑은, 숲을 이루는 나무 하나하나다. 멀리 떨어져서 볼 땐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 이 나무들이 자세히 보니 모양이 다 다르다. 수종(樹種)은 물론이고 이건 활엽수, 저건 침엽수, 어떤 건 꽃이 피고 어떤 건 열매가 열리고, 어떤 나무는 줄기도 곧고 정숙한데 어떤 나무는 줄기가 비틀어져서 정신이 없다.


멀찍이 떨어져 숲이나 보던 ‘톰(조셉 고든-레빗)’에게 어느 날 나무 하나가 눈에 확 띄었다. 톰은 사장의 새 어시스턴트로 갓 입사한 ‘썸머(주이 데샤넬)’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는 별 의미 없이 던진 썸머의 말의 미묘한 뉘앙스에까지 상처를 받으며 전전긍긍한다.


일정 시간의 설렘이 두 남녀 사이를 오가더니 톰과 썸머는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그들은 숲을 이루는 특별한 나무가 된 것이다. 나무들은 제각기 타고난 운명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듯이 톰은 그의 사랑 역시 운명적이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거리의 모든 이들이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를 향해 웃어주며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은 축복을 느낀다.


그런데 썸머는 아직도 숲 밖에서 고만고만하게 생긴 나무들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다. 톰은 썸머와 자기가 숲 속의 정다운 나무 커플인 줄 알았지만 아직 썸머는 숲 속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뭐든 의미 있고 사랑이 넘쳤던 그녀의 눈동자와 입술, 그리고 미소와 언어들이 그전에 알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것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놓고 쓴 500일 동안의 관찰기이며 그 남자의 500일간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약 1년 반의 시간 동안 어떤 한 사랑을 냉철히 관찰하여 사랑의 두 가지 관점을 담백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직장인 톰에게 거쳐간 500일 동안의 사랑에는 다른 평범한 대부분의 커플들에게 실제 일어났을 법한 흔해 빠진 연애의 희로애락이 다 담겼다. 시선을 통해 오가는 설렘,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유치한 커플 놀이, 최고로 로맨틱했던 밤, 그리고 시나브로 찾아드는 권태기.


하지만 이 조금도 새로울 것 없는 연애의 레파토리 속에서 톰은 자신의 사랑만큼은 특별하다고 여긴다. 아마 사랑이라는 숲, 그 속의 자신의 나무는 주변의 다른 나무들보다는 조금 더 근사할 거라고 자신했을 터. 정말로 사랑에 빠진 그에게는 불가항력의 착각이다. 그래서 톰은 도무지 썸머가 포기가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사랑 같은 건 없다던 썸머는 톰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이라는 나무를 다른 곳에 심으려 거짓말처럼 훌쩍 가버렸다. 톰은 다시 숲 전체를 본다. 썸머와의 500일을 보낸 후 사랑이라는 숲을 다시 보니, 사랑은 어쩌면 그저 ‘해프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는 했을 지도.


영화는 이렇게 한 남자의 ‘구여친’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사랑의 구태의연함을 지적한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권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엔 500일간의 연애 이야기가 무척이나 달콤하다. 숲을 보던 관객들은 차라리 착각에 빠져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나무가 되고 싶어진다.


‘500일의 썸머’ 이후 조금 더 성숙해진 시선으로 숲을 보던 톰에게 또 하나의 나무가 눈에 띄었다. 운명적 사랑은 다시 시작됐다. (2010년 1월 작성)


제목 :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10, 미국)

OTT : 디즈니+,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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