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생을 '페어'하게 공유하는 것

영화 '페어 러브'

by 무덤덤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 사랑에 빠지면 이런 오그라드는 멘트 정도는 흔히들 서로 해준다. 아마 일부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일 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연애를 하고 교감을 나누는 따위의 일들은 꼭 내 전부를 다 줄 필요까지는 없어도 내 삶의 일정 부분은 상대와 기꺼이 교류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그 교집합을 만드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참 겁이 나는 일인가 보다.


조그만 카메라 수리점을 운영하는 형만(안성기)은 대략 2평 정도의 작업공간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산다. 그래서 그 공간을 누군가가 침범하는 걸 참지 못한다. 그러니 나이 오십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보고 가끔 밀린 빨래를 해결해주시는 형수님의 속을 끓인다.


그런데 그런 형만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 그의 2평 남짓한 작업 공간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형만은 비록 그의 작업 공간 일부를 그녀에게 내줬을지언정 그의 삶 일부를 그녀와 공유하는 것에는 여전히 머뭇거린다.


영화 ‘페어 러브’는 50살 넘은 아저씨 형만과 친구의 딸인 25살의 여대생 남은(이하나)이 연애를 하는 이야기다.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매우 자극적일 수 있고 논란이 될 만한 이슈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두 사람의 연애에 응원을 보내거나 이해를 구하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보는 건 맞지 않다.


두 사람의 연애가 위기를 맞는 것은 20년이 넘는 나이차 때문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도 아니다. 두 사람은 그런 것쯤은 그저 무표정하게 무시해버리고 만다. 형만과 남은은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 눈치 안 보고 알콩달콩 설레는 연애의 스타트를 정답게 끊는다.


하지만 이 수줍은 연애가 순조롭게 시작되어 제법 무르익는가 싶더니 두 사람에게 ‘세대차이’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남은은 형만과 공통의 무언가를 공유하며 발전적인 관계가 되고 싶어하지만 형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설레는 연애의 감정을 서로 나누며 그저 남은이 조금 더 나이가 먹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형만의 미래는 그의 작업실 책상만큼의 크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가 뻔하면 그 사람의 앞으로의 사랑도 뻔할 것이다. 젊은 남은은 앞으로 펼쳐질 뻔한 사랑의 레파토리를 견뎌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비중 있는 어떤 부분을 상대와 공유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그 공유된 인생을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형만은 자신에게 비중 있는 인생의 어떤 부분을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선뜻 내놓기가 두렵다. 형만은 이미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버렸고 이제 와서 그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기에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과 형만의 사랑은 페어(fair)하지 않다. 기꺼이 인생을 공유할 의사가 있는 남은에 비해 형만은 겨우 자신의 홀아비 냄새가 나는 빨래감만 공유할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 ‘페어러브’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커플의 다소 도발적인 연애 이야기로 소소한 웃음을 주며 시작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영화는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인생의 발전적 교집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교집합이란 앞으로 변화할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페어러브’는 사랑하는 이와 공유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경쾌한 물음이다.


인생의 발전적인 변화를 일구는 사랑. 이를 위해서는 인생을 상대와 공정하게 공유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인생을 변화시킬 용의가 있음을 과감하게 선언하는 것이 아닐까. 형만과 남은의 교집합은 얼마만큼의 크기와 농도로 이뤄지게 될까. 두 사람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보다는 더 흥미롭기를. (2010년 1월 작성)


제목 : 페어 러브 (Fair Love, 201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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