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의심하다

영화 '킬러들의 도시'

by 무덤덤

런던을 무대로 활동하는 두 킬러에게 상부로부터 뜬금 없는 지시가 내려온다.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돼서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훌륭한 경치를 자랑하는 벨기에의 관광도시 브뤼헤에서 2주 동안 시간을 보내라는 것.


이렇게 레이(콜린 파렐)와 켄(브레단 글리슨)은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리게 됐지만, 사실 그들은 이른바 ‘작업’ 한 건을 이제 막 해치우고 오던 길이었다. 그건 레이의 첫 작업이었는데, 일이 살짝 틀어져 7세쯤 돼보이는 꼬마 아이가 엉겁결에 희생되고 말았다.


동화 같은 도시에, 아이까지 살해한 두 킬러들이라. 참 안 어울리는 두 이미지가 영화 내내 부대끼며 이상야릇한 아이러니를 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성당에 가느냐, 술집에 가느냐 같은 사소한 문제로 두 킬러가 티격태격 하면서 블랙코미디 같은 분위기를 풍기다가 어느 순간 아이를 죽인 데 대한 죄책감으로 레이가 눈물을 쏟으면 갑자기 숙연해진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영화가 묻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의 엄격한 구분과 그에 대한 처벌이 과연 항상 정당한가’이다. 자책하고 뉘우치고 눈물 흘리는 레이를 보며 평생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삼았던 켄은 확고했던 자신의 직업정신이 점점 동요하는 걸 느낀다. “저렇게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우리 같은 악당도 어쩌면 구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동화 속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한 브뤼헤에서 켄은 동화 속 엄격한 선과 악의 구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켄과 레이의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의 생각은 좀 다르다. 아이를 죽인 실수에 대해 마땅히 죽음으로써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신념이 그에게 있다. 선은 축복을 받고 악은 끔찍한 벌을 받는 동화 속의 굳은 이념.


동화를 찬양하는 해리와 동화를 의심하는 켄은 이제 막 악에서 선으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레이를 두고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이 대결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객을 향한 질문이다. 당신의 생각을 묻는.


제목 : 킬러들의 도시 (In Bruqes, 2008, 영국/벨기에)

OTT :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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