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을 본 후 새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문득 궁금해져 인터넷의 도움을 좀 받아보았다. 검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블로거의 글을 통해 알게 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개인사는 예사롭지 않다.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유독 흥미로운데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을 잠시 짚고 넘어가려 한다.
아이들에게 ‘죽음’은 굉장히 공포스러운 단어다. 필자도 어렸을 적 한동안 ‘내가 죽는다면?’이란 이 질문에 밤마다 무서워 잠을 설쳤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 공포를 대충은 기억한다. 어린 라스 폰 트리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역시 ‘죽음’을 무서워했단다. 그러나 그런 아들에게 부모님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라 하지 않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죽음의 필연을 가르쳤다. 죽음의 의미를 완충장치도 없이 직격탄으로 맞은 라스 폰 트리에는 어느 날 원자폭탄이 떨어져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상당히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단다.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함에는 치유나 위로가 없다. 아주 미약한 돌파구로 위태롭게 삶을 이어온 주인공은 결국 살해당하거나(‘어둠속의 댄서’) 폭주하거나(‘안티크라이스트’) 소멸하고(‘멜랑콜리아’) 만다. 주인공에게 눈곱만큼의 자비도 허하지 않는 감독의 화법은 오히려 보는 관객들에게 그 지독한 우울함을 옮겨주는 효과를 내곤 했다.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 자연(또는 우주)에 대한 공포는 손쉽게 존재의 허무로 이어진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행성은 조금의 주저함도, 그 어떤 반전도 없이 곧장 지구에 달려든다. 그리고 모두 소멸(영화 ‘멜랑콜리아’ 中). 우주적 시각에서 지구, 자연, 사회, 사람, 가족, 나 이 모든 개념은 그저 無에 가깝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로 태어났고 많아야 100년 정도의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 그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결국은 일어날 일, 어차피 존재는 사라질 뿐. 그렇다고 살아있는 매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회의하고 앞날을 비관하며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아야 하겠는가.
다행히 인간은 ‘망각’에 능하다. 그리고 인간은 대체로 보이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더 잘 보고, 사실을 믿기보다 믿고 싶은 것을 더 잘 믿는다. 타고난 ‘기만’ 능력이다. 인간은 ‘망각’과 ‘기만’으로 발생하는 행복과 희망으로 언제 죽을 지 모를 삶을 산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의 ‘존재의 허무감’은 ‘망각’이나 ‘기만’ 같은 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것 같다. 그의 영화에는 허무의 망망대해를 떠도는 인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허우적대고 있다.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조(샤를로뜨 갱스부르)’는 허무의 바다에서 ‘섹스’로 헤엄쳐 살아남고 있다. 그녀는 지속적인 ‘섹스’로 생존한다. 그에 대해 죄책감 따위 없다.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봤을 때도 그녀는 성적으로 흥분했을 뿐 울지도 않았다. ‘님포매니악’의 주요 줄거리는 그러한 조의 다채로운 섹스 경험담이다.
자신의 파란만장 섹스라이프에 그 어떤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에는 철저하게 불감증이었던 조가 어찌된 일인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년”이라며 그녀의 삶을 고백하며 영화는 시작되었다. 이를 듣는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태도가 무척 흥미롭다. 그는 조의 문란하다 못해 파격적인 섹스 에피소드를 피보나치 수열이나 플라잉 낚시, 그리고 바흐의 작곡 기법까지 동원해 친절하게 분석해준다. 하지만 조는 그런 샐리그먼을 뚱하게 쳐다볼 뿐 그녀의 자학은 계속 이어진다.
그녀를 삶을 지탱해주었던 섹스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볼륨 1은 조의 유일한 사랑, ‘제롬(샤이아 라보프)’과의 섹스 중 조의 울음으로 끝난다. 조는 “아무 느낌이 안나”라며 울먹였다. 존재의 허무를 겨우겨우 채웠던 섹스에, 불감증이라니… 조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 아니, 라스 폰 트리에의 허무와 우울함은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전이될 것인가. ‘님포매니악 볼륨 2’의 이야기들이 무수한 섹스신들보다 훨씬 더 기대된다. (2014년 6월 작성)
제목 :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2, 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프랑스/독일)
OTT : 쿠팡플레이, 왓챠, 웨이브
제목 : 님포매니악 볼륨 1 (Nymphomaniac: Vol.1, 2014, 덴마크/독일/프랑스/벨기에/영국)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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