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
앳된 조지(배리 케오간)는 덩케르크로 가는 배 안에서 아주 사소한 사고 한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가 한 일은 배 안에 구명조끼를 싣거나, 구조된 영국 병사에게 차 한 잔을 갖다 준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조지는 덩케르크의 영웅으로 명 받으며 지역신문에 실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실제 구조하지는 못했지만 구하려는 '선의'만으로 조지는 영웅이 된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이나 전투를 다루지 않는다. 승리하겠다는 필사의 의지도 없고 반드시 적을 섬멸하겠다는 독기도 없다. 이 영화에 있는 것은 목숨의 존엄함이다. 목숨을 지키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 그 자체가 승리이며 영광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광스러운 퇴각을 1.43 : 1 스크린에 깊이 담아냈다.
영화 '덩케르크'는 놀란 감독의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많은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처음으로 다루는 역사적 실화를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려는 것에 놀란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커다란 스크린을 관객의 눈앞에 바로 갖다 놓으면서 1940년의 그 때 그 장소로 시간이동을 시키는 것이다. 실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사용됐던 공군기와 민간인 배를 공수해다 영화에 소품으로 쓴 것은 리얼리티에 대한 놀란의 집착을 보여준다.
확실히 이번에 쓰인 아이맥스는 '덩케르크' 작전의 스펙터클을 확실히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공군기가 상공에서 펼치는 활약상이 아이맥스 화면상에서 단연 돋보인다. 하늘 또는 바다만이 가득한 스크린에 한두 대의 조종기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보다 보면 감독이 관객을 영화 안으로 잡아 끌어다 놓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덕분에 약간의 멀미를 할 수도 있다.
놀란 감독이 덩케르크의 철수 작전을 관객에게 실화 그대로 체감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있는데 바로 '플롯'이다. 시간을 떡 주무르듯 색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놀란의 '악명(?)'대로 영화 '덩케르크' 속 시간도 간단치 않게 흐른다. 영화의 숭고한 서사는 서로 다른 양의 시간을 갖고 있는 세 개의 공간을 겹쳐서 완성했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 혹은 하루, 혹은 한 시간. 이렇게 세 줄기의 이야기가 섞이며 수십만 영국군의 성공적인 탈주를 향해 몰아치듯 질주한다.
'덩케르크에 고립된 수십만의 연합군을 구한다'. 아주 심플한 영화 속 이야기는 주요 공간마다 시간의 양을 서로 다르게 분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꽤 복잡한 플롯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관객이 결말까지 온전히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절대 녹록지 않으며 이 간단명료한 스토리는 고도의 몰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관객들은 그 동안 전혀 몰랐던, 영국군의 위대한 탈출이 펼쳐지는 광활한 해변 한 가운데에 놓여지게 되었다.
과거 전쟁에서 퇴각한 타국의 역사가 지구 반대편의 관객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위에서 거론한 영상이나 플롯 때문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가장 의미 있게 그려지는 가치는 바로 '목숨'이다. 영화 마지막 탈출에 성공한 군인들에게 시민들이 환호를 보내자 어리둥절한 한 병사가 말한다. "그냥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그 말을 들은 노신사가 대답한다. "그거면 충분하네".
사실 '덩케르크'는 영국 국적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드는 영국 '국뽕' 영화라고도 분명 볼 수 있다. 그러나 놀란 감독은 그렇게 순수한 애국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덩케르크'가 저 먼 서방의 특정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승자의 역사를 담은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영국만의 '국뽕' 영화는 될 수 있을지언정 타국의 관객들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놀란은 최악의 필모그래피를 남겼을 것이다.
'덩케르크'는 구조한 영국군에게 차 한잔 갖다 준 소년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수십만 군인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려고 어선을 끌고 묵묵히 달려온 수많은 일반 시민들의 '선의'가 추앙 받는 영화다. 승리나 패배가 아닌 '생존' 그 자체를 숭앙하는 휴먼드라마로 평범치 않은 전쟁영화를 놀란 감독은 만들어냈다. 참 영리한 선택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을 위한 것이 아닌 77년 전의 사건을 되도록이면 사실 그대로 전달하려고 모든 수단을 성실하고 집요하게 이용하는 놀란 감독에게 또 한번 경탄하게 된다. (2017년 7월 작성)
제목 : 덩케르크(2017, 영국/프랑스/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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