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그녀

by 알프레도 토토

많은 다툼들이 그렇듯 표면적 갈등은 지나가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시작되었다. 엄마와 딸이라서 부딪쳤고 딸과 엄마여서 부딪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런 순간이었다. 문제는 켜켜이 쌓인 지난 시간들이었다. 언제였는지도 어떤 이유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날 이후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날을 세워 대화했다. 그 대화 중간에는 탄식과 울부짖음, 뜻 모를 허탈한 웃음. 뭐 그런 것들이 가득했다. 세세한 일화들을 적지 않는 건 딸과 엄마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겪지 않았다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이 기록은 반성문이 아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딸인 내 입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그녀를 이해한다거나 내가 잘못한 것이라는 식의 결론은 유치하고 비겁하다.

일종의... 일종의... 대나무숲이다.



의지와 체념으로 연락하지 않은 날들 매일을 눈물로 보냈노라고 그녀가 말했다. 부모는 죽어도 자식에게 말할 수 없는 마음들이 있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딸로서 잘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나 싶다고 그랬다. 어쩜 그렇게 매정하고 독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자랑스럽지 못하고 부족한 부모라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자식이라고 부모에게 다 말하고 사는 줄 아냐고 답했다. 왜 원죄의식 들먹이며 나를 죄인으로 만드느냐고 소리 질렀다. 성향이 다른 사람을 독하다는 말로 매도하고 공격하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도 내뱉지도 않은 말까지 멋대로 만들어 괴롭히지 말라고 억울해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 쏟아내는 와중에도 삼켜버리고 결국엔 하지 못한 말들 때문에 또 답답해졌다.



지리하고 죄책감 가득한 이 전쟁의 결말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패배만 남기에 괴롭다. 다들 그러고 산다는 말로 퉁쳐지지 않는 이 찜찜함. 이 노릇을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미칠 노릇이다. 나에게는 딸이 있고 고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차고 넘치지만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그녀의 보호 아래 살던 미성년자일 때보다 성인인 지금 더 구체적이고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것 같은 생활 패턴은 이 전쟁을 더 괴롭게 하곤 한다. 퇴근이 늦는 날 딸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기적처럼 이뤄지는 딸아이의 주말 외박, 채워지다 못해 버려지는 냉장고의 반찬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절대자와의 전쟁인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이제 기대수명의 3분의 2 이상을 살아낸 그녀는 미성년자와는 또다른 보호를 요하는 신체적 정서적 유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난 돌보기에 미숙하고 비수 꽂기에 능하다. 겨우 삼켜낸 말들이 그녀를 갈기갈기... 처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리고 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에 상처입기보다 같이 고민해주길 소망해왔다. 보편적 상황과 감정들이 꼭 내 삶에도 적용되어야 할까 싶은 날들이었다.



김치가 모두 떨어졌다. 처음으로 마트에서 김치를 샀다. 우선 한 포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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