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배송된 새 책들 목록 확인을 겸하여 제일 먼저 새 책을 넘길 때만큼은 이 곳 생활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인정해 버리고 만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문 밖의 소란 속에서 자유로운 기분은 현실감을 저 바닥까지 낮춰주곤 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불분명해지고 내 인생의 모양새에 만족감을 느껴버리고 만다.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벼운 바람에도 찰랑거리는 미색 커튼, 왠지 일반 교실 창보다 더 커보이는 창들 그리고 경계 없이 길게 늘어진 책상이 있는 그 공간을 즐겼다. 흩날리는 커튼은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울고 웃는 표정을 감추기에 좋았고, 연속된 창들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사로웠다. 학교 안에서 가장 넓은 책상의 좌석은 가득 차 있는 날보다 나 혼자 앉아 있는 날이 훨씬 많았다. 가끔 이동 수업으로 학급 모두가 책상을 메울 때면 친구들을 내 방에 초대한 기분이 들 정도로.
길다란 책장들 사이에 엇갈리고 마주치는 눈빛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고 말았지만 오래된 종이와 나무 서재가 만들어내는 그 묘한 냄새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기분을 주어서 시시때때로 높아지고 낮아지는 깃털같은 그 나이의 기분을 안정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그 시절 내가 도서관에서 가장 사랑했던 건 지금은 사라진 도서카드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내 학번과 이름을 가장 먼저 책마다 적어 놓고 싶었지만 성공한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가장 예쁘게 쓰고 싶던 글씨마저 도서카드를 쓸 때면 왜이리 삐뚤빼뚤인지. 역시 미완은 낭만의 최종 조건이다.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정성껏 선정한 목록들이 누군가의 낭만으로 스며들기를 주문처럼 바라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