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 노릇

가을

by 알프레도 토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면서 나이가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내가?'라는 질문을 되묻곤 했다. 내 앞의 10대들이 들으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 하겠지만, 난 항상, 10대 후반의 그 어디쯤에서 성장을 멈춘 채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시대와 전공 탓인지 내 20대는 열기도 부침도 유별나지 못한 애매한 시간들이었고, 해가 뜨고 달이 뜨듯 흘러 흘러간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막상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30대의 중간을 지나면서는 '으른'들이 그러하듯 이유없는 그리움과 후회 비슷한 것들을 담아서 빛나 보이는 어리숙하고 풋풋한 내 뒤의 이들을 바라보는 어쭙잖은 흉내도 내보면서 말이다.


부침 없는 삶을 투정하듯 누려서일까. 인간사에 애욕 없음을 지향한 건방짐에 대한 꾸짖음일까.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생각했던 삶의 굴곡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엄마가 우연하게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했던 것에 이어 올해에는 아빠가 직장암을 진단 받았다. 내 부모가 암환자라니.


사실 삶이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은 없다.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죽는 것에 대해 애석해 하지 않는 나의 습성이, 나와 다른 엄마아빠에게 여과없이 전해질 것이 더 두려운 쪽이다. 대신 어른의 고민들이 이런 걸까라는 단상들이 매일 쏟아지기 시작했다. - 병원비는 어느 정도의 규모일까. 부모님의 보험으로 처리 가능한 것일까. 친구 동생이 대학병원 간호사니까 부탁을 해 볼까. 그런데 부탁을 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일까. 얼굴 본 건 10년도 더 넘은 고등학생 때인데 귀찮은 친구 언니가 되는 건 아닐까. 현금이 여유는 없지만 얼마 정도는 드리고 싶은데 그 얼마는 어느 정도가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적당한 것일까.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스치는 생각들 사이로 출근을 하고 아이와 저녁을 맞이하는 며칠을 사이로 부모님은 언제나처럼 일을 척척 진행했다. 서울의 병원에 초진일을 예약했고 그 날짜는 엄마가 내 아이의 학원 픽업을 도와주고 있는 요일을 부러 비껴간 것임을 묻지 않고 난 알았다. 그리고 철없게도, 아프다는 사실에 보호의 대상으로 채널을 바꾸지 않는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7년차에도 난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 방향이 위를 향할 때 더 서툴렀기에.


다만 내 식의 위로를 준비한다. 허기로, 또는 일과로 행하던 식사가 이제 두 분에게는 의식과 신성함이 깃든 순간들이 될 것이라는 내 식의 판단으로 간편하고 예쁜 채식 요리책을 몇 권 골랐다. 계절에 맞는 식재료와 손질법을 담은 책을 찾으면서 결국 엄마의 일을 늘리는 것인가 싶기도 했으나 시선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본인의 병엔 나름 담담했던 그녀가 남편의 암 선고에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숨겨지지 않는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끓이고 볶는 과정에서 평안과 위로를 얻는 것을 상상한다. 요리의 성공과 실패 속에서 병을 벗어난 삶의 감각을 잃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진료 전 날 두 분이 묵을 호텔과 왕복 기차표를 예매해 드리면서 겨우 이 정도의 딸 노릇에 어처구니없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느낀다.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과 시작이라는 예감이 사위를 덮쳐 오는 생의 그림자같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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