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4)
생각지도 않았던 중동 근무는 오만 조선소 환경시설공사 입찰에 참가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입찰할 때 인건비에 Omanization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발주 사업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투입인원의 30%를 오만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채우는지 궁금해 물으니 유령 근로자(ghost worker)*를 쓴다면서 비용만 추가하면 된다고 했다. 유령근로자 명단을 가진 업체는 사방에 널렸다고도 했다.
유령 근로자; 이름만 걸어놓고 실제로 일하지는 않는 자국 근로자
사우디에도 Saudization이라는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5년에 시작한 ‘제4차 개발계획’부터 이 정책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미했고, 2003년에는 20인 이상 기업에서 30% 고용을 목표로 했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2006년엔 목표를 30%에서 10%로 낮추는 등, 이후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다가 2011년에 들어서면서 강화된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인 Nitaqat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자국민 고용을 의무화하는 건 자국민이 고용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로서는 그 나라의 숙련된 인력을 고용하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그런데도 그들을 택하지 않는다면 숙련되지 않았거나 임금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최저임금은 공공영역의 경우 월 90만 원이고 사기업은 그마저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자국민 고용률이 낮은 건 임금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다.
우리 회사에서 2012년 초에 동부 주베일 지역의 해안환경복원사업을 시작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전을 폭격해 누출된 원유가 걸프만을 따라 상당히 넓은 지역을 오염시켰다.* 원유 누출로 인한 피해를 보도할 때마다 인용되는 기름을 뒤집어 쓴 바닷새 사진이 바로 이곳이다. UN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이라크에게 전쟁보상금을 받아 피해국인 쿠웨이트와 사우디에 복원비용으로 지불했고, 그 일을 사우디 환경부가 주관했다.
전쟁 끝나고 20년 지나는 동안 모래해안을 덮었던 기름은 씻겨나갔지만 뻘밭해안에는 아스팔트처럼 굳은 상태로 남아있거나 뻘을 조금만 걷어내도 스며나올 정도로 남아있었다. 따라서 해안환경복원공사는 기름을 최대한 걷어내고, 남은 기름이 바닷물에 빨리 씻겨나갈 수 있도록 수로를 정비하고,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해안식물인 맹그로브를 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는 2011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Nitaqat가 이미 자리 잡은 때여서 예외 없이 이 조건을 맞춰야했다. 지금은 이보다 다소 높아졌지만 2012년 당시 시공현장의 의무고용비율은 10%였다. 이런 경우 오만에서는 유령근로자 명단을 사서 해결했지만, 사우디는 이미 그런 잔꾀를 용인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200여 명을 추가 고용했고, 아울러 스무 명 가까운 사우디인도 고용했다.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협력업체에서는 사우디인에 대한 모든 비용을 부담은 하겠는데 사람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방에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고, 때로는 간부라도 되는 양 참견하려 든다고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시원한 사무실에서 관리자로 일하고 싶어 하지 누구도 거친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라고 다르기야 하겠나만, 그래도 일을 감당할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는 능력이 되지도 않는 자리를 꿈꾸고, 능력에 맞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우디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할 일은 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는 일이지,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 십 년 넘게 여러 사우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유감스럽게도 제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는 본 일이 없다. 어쩌면 내 기준이 너무 높았을 수도 있다. 간혹 다른 회사에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정말 그런 건지 남의 떡이라 크게 보였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의무고용정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외국인 취업을 금지하는 현지화 직종을 지정하기도 한다. 5-6년 전쯤에 무려 70개 직종을 현지화 직종으로 지정한 일이 있었다. 해당 직종에 이까마 신규발급을 중지하고, 이미 일하고 있던 외국인은 이까마를 갱신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퇴출한다는 것이었다. 2-3년 전에는 전화기판매업과 약사를 현지화 업종으로 지정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작년에는 관광업 근로자를 3단계에 걸쳐 현지화 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일도 있다.
사우디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직종은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9개 그룹, 432 유닛, 2013개에 달한다.
물론 정책의 당위성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인력으로 무언들 이룰 수 있겠나.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앞서 열거한 직종 중 현지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직종은 아직 본 일이 없다.
몇 년 전 국빈방문 때 헤드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우리가 새로 겨냥할만한 시장이 어떤 것이 있을지 이야기 나누는 끝에 의무고용정책을 예로 들며 기술교육보다 정신교육 쪽에 좀 더 강점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이들의 문제는 능력보다는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산업자원부에서 자세한 설명을 듣겠다고 연락이 왔다. 설명은 했는데 진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는 해도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Nitaqat에서는 기업을 68개 업종, 6개 인원규모로 분류한 후 고용비율에 따라 등급을 red, yellow, green(low), green(medium), green(high), platinum로 분류한다. 기업운영에 해당하는 기준이기는 하지만, 등급이 낮을 경우 고용인의 비자 발급이나 이까마 갱신이 제한되기 때문에 교민들에게는 마냥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물론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면 이런 문제가 없겠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드물지 않다.
red 업체가 되면 신규채용은 물론 고용인의 이까마 갱신이 불가능하다. yellow 업체가 되면 신규채용이 불가능하나 고용인의 이까마는 갱신할 수 있다. 하지만 합계 체류기간이 2년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이미 2년을 넘겨 체류한 경우는 이까마 갱신이 불가능하니 이 점에서는 red 업체와 다를 바 없다.
참고로 우리 회사가 해당되는 ‘50명 이하 설계컨설팅 업체’는 비율이 red 14% 이하, yellow 15-22%, green(low) 23-30%, green(medium) 31-38%, green(high) 39-46%, platinum 47% 이상이다. ‘3천 명 이하 건설업체’는 red 5% 이하, yellow 6-7%, green(low) 8-10%, green(medium) 11-13%, green(high) 14-15%, platinum 16% 이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기준이 훨씬 낮은데, 이곳 대부분의 건설사업을 외국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