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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1. 2020

[사우디 이야기 5] 스폰서

사우디 이야기 (5)

스폰서는 보증인이라는 뜻이고, 보증인은 어떤 사람의 신원이나 채무를 보증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회 일각에서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기는 해도 스폰서라는 말 자체는 어쨌든 누군가를 돕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본뜻과는 달리 고용인의 신원을 옥죄고 있는 형틀에 가깝다.


모든 외국인 고용인은 사우디에 입국할 때부터 스폰서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 우선 거주허가증인 이까마부터 스폰서 명의로 발급받는다. 이어서 가족을 초청하고, 집을 얻고, 은행계좌를 열고, 운전면허를 받고, 차량을 등록하는데 스폰서 명의나 스폰서가 발급한 동의서가 필요하다. 이까마를 받고 나면 출입국할 때 별도의 출입국비자가 필요한데, 이 또한 스폰서 명의로 신청한다. 이까마 갱신도 역시 스폰서 명의로 이루어진다.


외국인이 회사에 고용되어 거주할 경우, 스폰서의 통제를 받는 건 이 정도에 그친다. 이까마가 정상적으로 발급되고 갱신된다면 출입국할 때마다 매번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정도라면 남의 땅에서 사는데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요즘은 고용인의 가족은 고용인이 스폰서가 되어 거주에 관련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가족의 거취까지 스폰서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그나마 불편을 많이 덜었다.


요 몇 년 사이에 사우디 공기업에 취업해 오는 교민들이 생겼다. 그렇기는 해도 이곳 교민 대부분은 한국기업의 지사나 현장에 파견된 경우와 오래 전에 그렇게 사우디에 왔다가 눌러않은 경우로 나뉜다. 결국 이곳에 첫발을 딛는 모습은 같다는 말이다. 취업비자로 들어와 거주허가를 받고 가족을 초청하는 것까지는 같고, 그 중 누구는 돌아가고 누구는 남는다. 돌아갈 사람은 위에 설명한 정도의 불편만 감수하면 된다. 문제는 남는 사람들이다.


이 나라는 외국인이 사우디인과 결혼해도,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에게도 국적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에 이곳에서 태어나 마흔이 넘게 살도록 자기 나라에 가보지도 못한 ‘에티오피아 국민’이 있다. 또 영주권 제도도 없다. 얼마를 살았던 이까마를 갱신하지 못하면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초청이민이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작년에 영주권에 준하는 Green Card 제도가 생겼다. 이를 발급받으면 자기 이름으로 사업도 하고 재산도 취득할 수 있다. 출입국도 사우디인과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조건이 까다롭고 비용도 2억 5천만 원에 이른다. 이를 발급 받은 이가 스폰서가 되는 것이니, 가족도 함께 혜택을 받는다.


돌아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스폰서를 찾아서 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남은 사람 중에 현지기업에 취업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작거나 영세한 법인 스폰서, 아니면 개인 스폰서를 찾게 된다. 이를 위해 매년, 혹은 매달 스폰서에게 비용(sponsor fee)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은 교민과 스폰서가 어떤 사이로 얼마나 오래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교민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제각각이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 한 분은 수십 년 같은 스폰서를 두고 있는데, 처음부터 비용을 받지 않아 이까마 갱신할 때 그저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한다.


스폰서가 영세하다 보면 의무고용비율도 맞추지 못하고 때로 세금이나 공과금이 밀려서 법인 면허를 갱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경우에 이까마 갱신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스폰서에게 비용을 다 지불하고도 이런 문제 때문에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는 작은 불편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외국인 개인은 사업을 운영할 수도 없고 부동산 취득도 불가능하다. 사업을 하자면 법인을 설립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야 한다. 교민 중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규모가 작은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폰서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자신은 형식상 고용인이 된다. 실제로는 자기 소유이지만 자기 명의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에 단지 이까마 유지를 위해 관계를 맺는 스폰서와는 달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 한 교민은 매달 급여보다 많은 비용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부담은 그저 비용을 지불하면 해결된다. 더 큰 문제는 스폰서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하기 때문에 은행계좌도 스폰서 명의로 열어야 하고 입출금도 스폰서 명의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거래가 스폰서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스폰서의 동의 없이는 영업이익조차 자기가 가지기 어렵다.


처음 부임했을 때 이곳에서 꽤 큰 사업체를 운영하던 학교 선배가 한 분 계셨다. 그분 역시 스폰서 명의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은퇴할 때가 되어서 이곳 사업을 접고 돌아가려 하는데 스폰서가 계좌를 동결해 버렸다. 나는 그분과 스폰서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고, 그분 주장대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그분과 아드님이 일 년 넘게 스폰서와 분쟁하면서 겪는 부당함을 곁에서 지켜봤을 뿐이다. 자기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아무런 자격을 갖지 못해 스폰서의 횡포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던 그분은 결국 엄청난 재산을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런 경우를 생각한다면 앞서 설명한 Green Card는 적지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매우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도 십 년이 넘게 흘렀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폰서 문제만큼은 그때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른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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