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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2. 2020

[사우디 이야기 6] 영어

사우디 이야기 (6)

회사의 핵심사업이었던 기반시설(infra-structure) 설계는 시간이 지나며 시장이 포화되어 갔고,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시장이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새로 시작한 환경정화사업도 기대만큼 시장이 열리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틈만 나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중에 사우디에서 합작법인을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담당하던 업무도 포함이 되어 있고 목소리를 높인 죄도 있어서 회사에서 책임을 맡으라고 했을 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설계를 주업으로 하는 엔지니어링업체가 해외에 지사를 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업종 특성상 해외 출장도 별로 흔하지 않아서 해외 근무는 더욱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십 중반에 접어들어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벼락같이 해외로 근거를 옮겨야 하게 된 것이다.


설계문서라는 것이 영어와 떼놓을 수 없는 것이니 이곳에 와서도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말하고 듣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으니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우디와 합작법인을 만들기는 했지만 운영 파트너는 미국인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한국인과 삼십 년 가까이 일한 경험이 있어서 대화할 때 완급을 잘 조절해줘서 일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임하고 몇 달 지나서 4년짜리 항만 설계ㆍ감리 입찰을 준비하게 되었다. 동쪽(걸프만)에 세 곳, 서쪽(홍해)에 다섯 곳의 항만시설을 개ㆍ보수하는데 필요한 설계ㆍ감리 용역이었다. 입찰서 작성을 위해 본사에서 열 명 넘는 직원이 오고 이곳 지원인력까지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버스를 대절해 열흘 넘게 모두 돌아보았다. 본청 발주 사업이라서 그랬는지 가는데 마다 책임자가 직접 안내를 하는데, 하나같이 영어가 자연스럽고 수준도 높았다. 적어도 회의 참석자 중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기술적인 내용을 협의하는 일이야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공식방문이 되다 보니 짧게라도 의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몹시 난감했다.


부임초기에는 주로 정부 중앙부처나 국영기업을 찾아다녔다. 방문하면 대체로 책임자급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실무자를 소개받게 되는데, 책임자급 사람들 중에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었다. 요즘은 재정난 때문에 상당히 축소되기는 했지만, 당시는 매년 정부 자금으로 10만 명씩 유학을 보낸다는 말이 있을 때였다. 그러니 이들의 영어는 내가 주눅 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영어로 기회를 달라고 설득하는 건 정말 진땀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어 능력은 실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주처를 방문해 회사를 소개하는 건 대체로 10분 내외, 사업을 제안할 때는 길게는 30분 정도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그저 시나리오 쓰고, 미국인 동료에게 검토 부탁하고, 외우고, 리허설 여러 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지나고 나서 지방정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우디 전체 13개 지방정부 중에 세 곳, 그리고 산업도시를 관장하는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를 7년 넘게 출입했다. 재미있는 건 중앙에서 멀수록, 힘이 적을수록, 영어를 쓰는 사람도 적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더 적더라는 것이다. 오지인 타북시에서는 편하게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시장이 유일했다.


환경복원사업을 수행할 때 일이다. UN에서 주관하는 사업이어서 사업관리단의 절차가 무척 까다롭고 요구하는 문서도 많았다. 모든 행위가 공사비와 직결되는 것이니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요한 문서와 메일은 직접 작성했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회화가 아니라 문법이 중심이어서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문법교육 덕을 톡톡히 보았다. 문서는 무엇보다 내용이 정확해야 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문법을 제대로 지켜 쓰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생략과 비약이 빈번해 글이 불분명하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에 비교적 익숙하다는 인도ㆍ필리핀 사람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같은 문장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여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행히 내가 작성한 메일이나 문서는 내용이 분명하지 않아 문제가 된 일이 없었고, 모두들 그 점을 인정했다. 이 덕분에 문법이 문서의 내용을 선명하게 만드는 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스마트원전 설계를 하게 됨에 따라 우리도 부지평가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했다. 현지전문가가 합류해야 하는 일이어서 킹사우드대학과 협력하기로 했다. 한 번은 지질학과 학부생 현장실습에 초대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원전 부지평가에 대해 설명도 하고 질문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대학생을 만나본 일은 있어도 많은 학생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 중 어느 누구도 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했던 경우는 없었다.


이곳 대학에는 외국인 교수가 무척 많다. 아랍어가 가능한 교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국인 교수들도 몇 분 있다. 이곳 대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언어로 강의하는지,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한국인 교수께 물어보니 놀랍게도 대학의 기준 언어가 영어라고 한다. 킹파드석유광물대학은 이슬람 종교과목을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학 입학하기 전에 한 해 동안 예비학교에서 영어ㆍ수학ㆍ컴퓨터 등의 기초과목을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기는 해도 예비학교에서 한 해 영어공부 하는 것으로 영어강의를 소화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에 쏟는 노력도 만만치 않은 것과 비교하면 이들은 평소에도 우리보다는 훨씬 빈번하게 영어에 노출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교재도 영어 중심이다 보니 아랍어 교재 중 변변한 것을 찾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영어 강의에 치중하게 된다고 한다.


사우디 부임이 결정되고 나서 아내가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다 늦게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아마 꽤 오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내가 영어 쓰는 걸 보지 못했다. 어차피 격식 차려가며 말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니 장보러 갔을 때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을 텐데, 그들도 매한가지여서 그저 단어 몇 개에 손짓발짓 이상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은 외국인이 사우디 전체인구의 1/3이 넘는다. 취업인구는 오히려 사우디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다. 외국인 중에 아랍인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 건 영어를 쓰는 외국인은 차고 넘친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 중에도 아랍어를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인이나 유럽인들 중에 아랍어를 쓰는 경우는 딱 한 번 봤다. 하도 신기해서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드문 일이다. 아랍인이 아닌데 아랍어를 쓰는 이들은 주로 ‘을’의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가게에서, 병원에서, 식당에서 손님 맞는 이들. 미국인이나 유럽인도 ‘을’이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들은 ‘을’인데도 자신들이 ‘갑’인 줄 안다. 우스운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십 년 넘게 그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들이 쓰는 영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국적을 구분할 정도가 되었다. 인도ㆍ파키스탄ㆍ필리핀까지는 거의 정확하게 구분하고, 이집트ㆍ레바논 인근ㆍ수단 정도까지는 대체로 구분하고, 레바논ㆍ요르단ㆍ시리아는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미국 영어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건 미국인 동료보다 내가 낫다.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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