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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5. 2020

[사우디 이야기 7] 기도시간 (Salat)

사우디 이야기 (7)

사우디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된 첫 번째 일이 기도시간이었다. 부임하기 몇 년 전에 두바이에 출장 온 일도 있었고 부임하는 길에 입찰 때문에 오만에서 며칠 머물기도 했지만, 두 나라 모두 이슬람 국가인데도 기도시간이라고 나다니는데 제약을 받은 일은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줄맞춰 서서 기도하는 걸 보기는 했다.


부임해서 얼마동안은 그저 호텔과 사무실을 오갔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았고 기도시간이라고 호텔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어서 정확하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기도시간마다 영업장 문을 닫는 줄 알았다. 부임하기 전에 이런저런 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기도시간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것이 생활이었는데.


호텔에서 몇 달 묵다 하숙집으로 옮겼다. 당시 눈에 띄는 건물도 많지 않고 그 집이 그 집 같아서 그나마 모스크가 길잡이가 되었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그만 하숙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길잡이로 여겼던 모스크를 혼동했던 것이다. 애먹다가 하숙집을 찾아 들어가니 모스크가 사방에 널렸는데 그걸 길잡이 삼으면 어떻게 하냐는 핀잔이 쏟아졌다. 방이 2층에 있었는데 하필이면 창문이 모스크에 걸어놓은 스피커를 마주보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아잔 소리에 한동안 애를 먹었다. 창문을 닫아도 전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쯤 기도시간 알리는 소리를 아잔이라고 부르는 줄 알게 되었다. 조금 지나니 아잔 소리에도 익숙해졌다. 사람은 살게 마련인 줄 다시 깨달았다.


무슬림은 매일 다섯 번 기도한다. 해 뜨기 전에 Fajr(파즈르), 해가 가장 높을 때 Dhuhr(드루흐), 한낮과 해질녘 사이에 Asr(아스르), 해질 때 Maghrib(마그립), 해지고 나서 한 시간 반  지나 Isha(이스하)를 드린다. 기도하기 전에 손발을 씻고, 기도시간은 5분 남짓. 딱히 얼마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대체로 30분쯤 지나야 자리로 돌아간다.


기도시간은 매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다르다. 기도시간에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으니 아침마다 신문에 나는 리야드의 기도시간을 챙겨야 했다. 컴퓨터에 기도시간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깔아놓기도 하고 기도시간마다 알람이 울리는 시계를 준비해놔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뭔가 볼 일이 있어 나가다 보면, 약속을 정해놓고 나서 보면, 늘 기도시간에 걸렸다. 언젠가는 아스르 시작되기 전에 서점에 들어가서 마그립 끝나고 나왔는데, 아스르와 마그립 때 두 번이나 매장 밖으로 쫓겨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린 일도 있었다.


아무튼 기도시간이 생활이 되기까지 그러고도 몇 년이 더 걸렸다. 이제는 기도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시간을 잡는다. 점심은 드루흐 끝나고 나서, 저녁은 마그립 시작하기 전, 이런 식이다. 날씨가 덥기 때문인지 그렇게 습관이 들어서인지 이곳에서는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다. 한국 사람들은 여기서도 부지런하다. 그래서 우리 교민들은 마그립과 이스하 사이에 저녁식사로 모이는데 이들은 이스하가 지나야 하나둘 씩 모인다. 그래도 요즘은 일과 시작 시간이 많이 빨라졌다.


날씨가 워낙 더운 곳이어서 낮에는 나다니는 사람도 적고, 그래서 문을 열지 않는 상점이 많다. 그러다 보니 상점은 대개 아침에 문 열어서 드루후 시작할 때 (대략 정오) 닫고, 아스르 끝난 후에 (대략 오후 4시) 다시 열어 밤 9시나 되어 문을 닫는다. 음식점은 아예 드루후 끝나고 (대략 오후 1시) 문을 열어 자정 무렵까지 영업을 한다. 지금도 상점은 하루 두 차례 문을 연다. 출퇴근을 두 번 해야 하고, 중간에 비는 시간 동안 뭔가를 하기도 애매해서 참 불편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것이고, 일과를 거기에 맞춰 사는 이들에겐 그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기도시간은 계절에 따라 위치에 따라 매일 변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궁금했다. 시계조차 없었던 예전에는 어떻게 기도시간을 챙길 수 있었을지도 궁금했다. 막연하지만 해시계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그리고 짐작대로였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야 보면 아는 것이고, 한낮에 있는 드루흐는 해가 가장 높을 때 (곧게 세워놓은 막대기의 그림자 길이가 가장 짧을 때), 한낮과 해질녘 중간에 있는 아스르는 막대기 길이와 그림자 길이가 같은 때라고 했다. 결국 오늘날 복잡하게 계산하는 것을 그들이 단순한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아니라, 워낙 단순한 일인데 지금 와서 해시계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복잡해진 것이다. 그저 해시계를 들고 다니다 아무데나 아무 때나 펼쳐놓으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물론 구름 끼고 비오면 해시계를 쓸 수 없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는 비도 안 오고 구름이 끼어도 해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는 앱으로 쉽게 기도시간을 확인한다. 앱이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는 위치를 확인해 그 지역에 맞는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방식과 고정된 지역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나뉜다. 위치를 확인해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서 지역을 고정시키는 앱을 쓰고 있다. 그래서 출장 다닐 때는 도시를 바꿔주거나 위치확인 방식의 앱을 쓴다. 리야드 동쪽으로 4백km 떨어져 있는 걸프만 항구도시 ‘담맘’은 기도시간이 15분쯤 빠르게 시작하고, 서쪽으로 1천km 떨어져 있는 홍해 항구도시 ‘제다’는 30분쯤 늦게 시작한다.


이제는 기도시간이 생활이 되어서 불편 없이 산다. 하지만 라마단(금식월)* 때는 이런 기준이 뒤죽박죽이 되는(것처럼 보이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고 그 이유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평소 기도시간에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 라마단 때는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해야 하기 때문에 해가 져야 비로소 음식을 먹는다. 그러니 평소에는 마그립이 끝나야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라마단 때는 음식을 앞에 놓고 기다리다 해가 지면(마그립이 시작되면) 식사를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마그립 시작하고 1시간 30분 지난 후 시작되던 이스하가 이때는 2시간이 지난 후 시작된다. 아랍인 동료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시원치 않다.


라마단 때는 해가 떠있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하고 담배도 못 피운다. 그래서 첫 번째 기도인 파즈르 시작하기 전에 식사를 하고 마그립이 시작될 때까지 금식한다. 무슬림이 아니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식점이 문을 열지 않으니 식사를 할 방법이 없다. 그들도 ‘대중 앞에서’ 물을 마시거나 뭔가를 먹으면 무슬림과 마찬가지로 처벌 받는다. 호텔에서는 아침식사를 골방 같은데 차려놓고 메뉴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차려놓은 걸 먹을 수 있을 뿐, 별도로 주문을 받지는 않는다.


이전에는 기도시간에 영업을 금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영업장에 있는 고객은 모두 내보냈다. 다만 병원이나 공항은 예외였고, 근무지에서는 무슬림만 모여 기도할 뿐 일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기도는 모스크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 상업시설, 어지간한 건물에는 모두 기도실이 있다. 기도실이 없으면 널찍한 공간에 기도 매트를 길게 깔아놓고 기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은 그대로 두고 음식점은 조리만 하지 않고 슈퍼는 계산만 해주지 않는 정도로 바뀌어 갔다. 얼마 전에 이곳 국회에 해당하는 ‘슈라위원회’에서 기도시간에 영업을 허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즉각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결정이라고 비난하는 기사와 칼럼이 쏟아졌다. 기도 자체는 5분 남짓하고 기도 전에 손발 씻는 시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30분은 길다. 게다가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이 시간은 이미 휴식시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슈라위원회’에서는 기도시간으로 인한 비용손실을 10조 원 정도로 추산한다고도 하고, 청년실업률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기업연구소가 기도시간 없앨 것을 권고했다는 기사가 난 것을 보면 기도시간이 없어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미 많은 음식점에서 실제로 기도시간이 없어졌고, 슈퍼마켓도 기도시간에 계산해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공직자도 만나보고 기업인도 만나봤는데 공직자와 달리 기업인 중에 기도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1년 넘게 함께 일하는 동안 회사 사우디 파트너가 기도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정부투자회사 사장으로 선임된 기업인을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대했는데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피스빌딩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근 아랍국가에서 온 직원들이지 ‘높으신 분’들은 없다. 아마 원래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왕도 사망하면 입던 옷으로 둘둘 말아 들것으로 옮기고, 매장하고 나서 한자 남짓 흙으로 덮고 비석도 세우지 않는 이슬람 관습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처음에는 꼬박 기도시간을 지키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 시간에 내 자리에서 기도하리라 생각했다. 무슬림을 선교대상으로 여기는 종교의 교인으로서 그들만큼 열심을 내지 못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심은 한 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가지고 선교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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