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Oct 27. 2020

[사우디 이야기 8] 여성복장, 아바야

사우디 이야기 (8)

리야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킹덤센터 3층에 아직도 여성만 출입이 가능한 매장이 있다. 여성만 고객으로 삼을만한 상품이 무엇인지 궁금해 아내에게 물어보니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유는 상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여성이 ‘아바야’를 벗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이 ‘아바야’ 입은 걸 보면서 이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고집하는 건 여성이라고 했다. ‘아바야’를 여성존중의 표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되는 여성전용매장이 생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던 이 규제가 작년에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하면서 풀렸다. 관광객에 한해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허용한 조치를 조만간 내국인에게까지 확대하겠다고 하니, 여성전용매장도 곧 다른 용도로 전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코란은 여성이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나 장신구 보이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 이유 때문에 여성이 온 몸을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는 것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게 한 것을 합리화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종교경찰이 길에서 이를 위반하는 여성을 단속하기도 했다. 현 왕세자가 실권을 잡으면서 종교경찰의 권한을 대폭 회수하고 나서는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아내가 처음 왔을 때 ‘아바야’만 입고 스카프를 쓰지 않고 나갔다가 지적받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좀 나아진 때여서 종교경찰에게 막대기로 맞지는 않았다. 그런 종교경찰이 걸프전 때 셔츠바람으로 돌아다니는 미 여군을 단속하다 성희롱으로 몰려 오히려 미군에게 체포되었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여성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 옷으로 가려야 한다. 아직도 보수적인 동네에 가면 여성들이 검은 장갑을 끼고 눈조차 내놓지 않고 다닌다. 옷차림은 크게 겉옷과 쓰는 것으로 나뉜다. ‘아바야’라고 하는 겉옷은 검정색이어야 하고, 몸매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며, 옷깃을 여며서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몸을 가리다 못해 바닥을 쓸고 다닐 정도로 길게 입기도 하지만, 형태는 대동소이하다. 머리에 쓰는 것은 얼굴을 내놓는 히잡(스카프로 대신하기도 한다), 눈만 내놓는 니캅, 눈조차 가리는 부르카로 나뉜다. 걱정은 마시라. 눈조차 가려도 보인단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옷으로 뒤집어 쓴 여성이 서있는 게 아닌가. 넋 놓고 서있다 거의 나자빠질 뻔 했다. 뭐 그런 일에 놀라나 하겠지만 한 번 당해봐라, 안 넘어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그렇게 서있으면 앞을 보는 건지 돌아선 건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랍 어린아이 하나는 뒤로 넘어져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늘 보고 사는 아이조차 그런다는데.


미장원에 아내를 데리러 갔는데, 레바논 미인 하나가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하고 ‘아바야’로 ‘히잡’으로 온통 가리고 나가더라며 그렇게 가릴 거면 뭐 하러 치장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내가 웃었다. (레바논에는 대단한 미인이 정말 많다. 베이루트에 있는 레바논 동료 집에 놀러갔다가 조카딸 보고 숨이 멎었던 일이 있었다. 애기 엄마였는데, 생전에 다시 그런 미인을 볼까 싶었다. 숨이 막히는 통에 억울하게 말 한 마디 못 붙여봤다. 이 말 하다가 아내에게 타박께나 받았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사실 이곳 여성들 옷차림이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남녀가 유별한 곳이라 남녀동반으로 파티 하는 건 꿈도 못 꾼다. 결혼식을 해도 신랑 결혼식, 신부 결혼식 따로 한다. 결혼식에 참석하고도 남성하객은 신부를 못 보고 여성하객은 신랑을 못 보는 것이다. 교민 중 피아니스트 한 분이 결혼식 피로연에 자주 불려 가는데, 피로연장에서 여성 옷차림이 얼마나 화려한지 짐작도 못할 정도라고 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쇼핑몰에 여성복 진열해놓은 걸 보고 몹시 의아했다. ‘아바야’ 안에 여성복 입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쇼윈도마다 밤무대 의상 같이 속히 훤히 비치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드레스로 가득 차 있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파티에서는 으레 그런 옷을 입는단다. 과문한 탓인지 한국에서 그런 옷 입고 파티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검정색에 몸매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면 ‘아바야’ 값이 특별히 차이 나겠나 생각했지만, 정말 뭘 모르는 생각이었다.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내가 봐도 품격이 다른 ‘아바야’가 있었다. 싼 것은 만 원 안팎인 것도 있지만 수백 만 원이 넘는 것도 적지 않다. 여성들이 모인 곳에서는 ‘아바야’로 대접이 달라진다고 해서 아내 역시 거금을 들여 그런 용도로 하나 장만했다. 장식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해도 그것이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좋은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고, ‘옷이 흐른다’는 게 저런 걸 두고 말하는 가보다 하는 것도 있었다. 놀랍게도 고급 원단은 모두 한국산이라고 했다. 중국제 저가 상품에 밀려 예전보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지금도 한국산 고급원단의 점유율은 20~30%를 상회한다.


이웃에 애기 엄마가 하나 이사 왔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보러 갔는데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더란다. 미모의 동양여성이어서 쳐다보는가 보다 하고 목에다 힘을 잔뜩 주고 돌아오다 보니 ‘아바야’를 안 입었더란다. 사실 애기 엄마가 미인이어서 나는 그 말에 설득되었다. 아내는 이곳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거기엔 ‘아바야’ 공이 크다. 여성이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외출하는 게 어지간한 불편함을 상쇄시킬 만큼 의미가 큰 줄은 미처 몰랐다. 입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서 여성 손님 올 때마다 공항에 아바야 들고 나가는 건 여전히 번거롭다.


‘니캅’이나 ‘부르카’를 쓴 여성을 보면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여성을 바로 쳐다보는 건 예의를 떠나 범죄로 여겨지는 곳이어서 궁금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어느 날 기내에서 ‘니캅’ 쓴 여성이 식사하는 걸 봤다. (‘니캅’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두건을 쓰고 스카프로 눈 아래를 복면처럼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에 음식을 넣을 때마다 스카프를 드는 것이었다. ‘부르카’는 하나로 되어 있어서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싶었지만, 십 년 넘도록 그런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지금은 식당이 더 이상 남성 공간(single section)과 가족 공간(family section)으로 나뉘어있지 않지만, 예전엔 가족석으로 구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림막까지 있어서 다른 가족이 보지 못하도록 칸을 가리고 식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부르카’를 쓴 여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부르카’를 벗지 않고 식사를 하기가 몹시 불편했을 테니 말이다.


머리까지 가린 여성들이 상대를 알아보는 게 몹시 신기했다. 쇼핑몰 같은 곳에서 여성들이 서로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것도 그렇고, 여성들을 태우러 온 운전기사가 알아보는 건 더 신기했다. 이곳엔 대중교통이 없어 어지간한 가정에 운전기사가 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니 여성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아바야’는 모두 거기서 거기니 그럴 때 주로 여성이 들고 있는 핸드백으로 구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명품 핸드백 매장이 참 많다.


아이들에게 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돌아오는데 앞에 발랄한 여대생이 줄서있었다. 평소 생각하는 사우디 여성과 느낌이 너무 달라서 유심히 봤는데 내릴 땐 찾을 수 없었다. 온통 가려놓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젊은 여성이 이런 ‘몰개성의 규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이야 익숙해서 못 느끼지만, 사실 화려해야할 쇼핑몰이 온통 검정색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칙칙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떨어져서 보면 검은 새들이 떼 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사우디 밖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반갑기도 한 모양이다. 언젠가 명동에서 ‘아바야’ 입은 중년 여성을 봤는데, 아내가 엄청 반가워했다. 그래도 난 피하고 싶더라.


작년 가을 복장 규제가 완화되면서 ‘아바야’를 입지 않은 여성 관광객들이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이 늘어났다. ‘아바야’도 색깔이나 모양이 모두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입국이 자유로워지고 내국인 여성에 대한 규제까지 풀리고 나면 눈이 좀 시원해지겠다. 짧지 않게 살았는데도 쇼핑몰이 검정색으로 뒤덮인 모습은 아직도 짜증스럽다. 언젠가 유럽 식당에서 ‘아바야’ 입고 ‘니캅’ 쓰고 들어오는 여성을 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일도 있었다. 기껏 그것 피해서 여행 왔는데 여기서 까지 봐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난 이곳에 더 살면 안 될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이야기 7] 기도시간 (Sala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