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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9. 2020

[사우디 이야기 9] 남성복장, 도브

사우디 이야기 (9)

많은 나라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GCC국가 말고는 남성이 일상생활에서 전통복장 입는 걸 본 일이 없다. 방송에서도 본 기억이 없고, 그런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곳 남성은 모두 전통복장을 입는데, 주로 입는 게 아니라 늘 입는다. 그래서 어쩌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걸 보면 누군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우디 파트너가 현장에 왔을 때 호텔에 데리러 갔다가 청바지 차림으로 로비에 앉아 있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간 일도 있다.     


아라비아반도에는 사우디를 비롯해서 모두 일곱 나라가 있다.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그리고 예멘까지. 이 중에서 예멘을 제외한 여섯 나라를 걸프협력체(GCC, Gulf Cooperation Council)라고 부른다. 예멘은 산유국이 아니어서 빠졌다는데, 공교롭게도 예멘을 뺀 여섯 나라 남성만 전통복장을 입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러고 보니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아랍국가 중에서 예멘 남성만 전통복장 입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다른 여섯 나라와는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해서일까? 


지금은 예멘이 오랜 전쟁과 가난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중동 그 어느 나라도 견주지 못할 만큼 역사와 문화가 유구하고 뛰어났다. 그간 예멘 동료와 두 번 일해 본 일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명석했고 무엇보다 신의가 있었다. 협의된 일은 따로 챙기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 안에 기대한 만큼, 때로는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직원 채용 때 미국인 동료가 가능한 예멘 사람은 피하라고 조언한 일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신뢰하기 어렵고 사납기까지 하다고 했다. 겪어보니 옳지 않은 선입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중동 여섯 나라 남성들은 모두 ‘도브’라는 흰옷을 입는다. 발끝까지 덮는 자루처럼 생긴 옷이다. 대개 가슴과 허리 양쪽에 주머니 하나씩 달린 것을 빼면 아무 장식도 없고 허리띠도 매지 않는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샌들을 신는다. 자루처럼 생긴 건 비슷한데 나라에 따라 깃이나 주머니, 소매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두건은 오만은 타키야(Taqiyah)만 쓰고 나머지는 타키아 위에 큰 천으로 된 슈막(Shumak)을 쓴 후에 이깔(Iqal)이라는 줄로 이를 고정시킨다. 이 중 사우디만 붉은색 체크무니 슈막을 쓴다. 사우디인 중에는 흰 슈막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붉은색 체크무니 슈막을 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옷이 몹시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전통복장이 각 지역의 기후와 관습에 최적화된 것이듯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동은 햇빛이 강해서 가능한 몸을 많이 가려야 한다. 옷으로 몸을 감싸도 워낙 건조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덥지가 않다. (이곳에서는 섭씨 50도가 넘어가도 그늘에만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우리나라 한여름보다 견디기 쉽다.) 그러자니 자루처럼 생긴 통옷으로 몸을 감싸고 머리에 큰 천을 두르는 것이다. 게다가 사막에는 모래바람이 자주 부는데, 그럴 때 넓은 슈막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만 내놓는다. 모래바람 피하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이깔은 낙타를 묶어놓는 줄로 사용하던 것이란다. 몇 년 전에 킹사우드대학 학생들과 현장실습을 함께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사우디 교수 하나가 굳이 슈막을 씌워줬는데, 모자 쓰는 것보다 덜 덥고 많이 가리니 한결 견디기 쉬웠다.


타키야 (흰 속 모자), 슈막 (붉은 체크무니), 이깔 (검은 줄)


머리 위에 슈막만 쓰면 미끄러져 내리니 먼저 타키야를 쓰고 위에 슈막을 얹은 후 이깔로 고정시킨다. 종교인이나 종교경찰, 혹은 신앙이 깊은 무슬림들은 이깔을 사용하지 않는데, 그래서 볼 때마다 혹시 흘러내리지나 않을까 아슬아슬하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염을 기른다. 이전에 종교경찰이 활개치고 다닐 때 워낙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수염 기르고 이깔 없이 슈막만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피하게 생기지 않았나?


오만 사람은 옷 모양이나 두건이 차이가 나서, 사우디 사람들은 붉은 슈막을 써서 금방 구분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그만그만해서 처음에 와서는 잘 구분하지 못했다. 이제는 옷을 보면 금방 구분한다. 그래도 얼굴로는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랍에미리트는 일곱 개 부족이 모여서 만든 연합국인데, 처음에는 카타르와 바레인도 이에 합류하는 걸 검토했다니 말이다. 


아바야가 비슷비슷해 보여도 값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도브도 그런 모양이다. 살 일이 없으니 값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원로 박사 한 분이 이곳 정부기관에 자문역으로 일한 일이 있다. 사무실로 찾아가면 종종 도브를 입고 있었는데, 그렇기 편하고 시원할 수가 없다고, 권할 만 하다고 했다. 그래도 입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난해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허리띠를 묶지 않으니 애써 줄여놓은 체중이 훌쩍 늘어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비만인 사람들이 많은 게 옷 탓도 있겠다.


이곳은 남자화장실에 소변기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리야드공항 국제선 터미널, 큰 호텔 몇 곳 정도가 있을 뿐, 최근에 문을 연 리야드공항 국내선 터미널에도 소변기가 없다. 쇼핑몰에도 없고, 이전 사무실이나 지금 사무실에도 없다.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우디 남성들이 모두 도브를 입고 다니는 걸 보면서도 그들이 소변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은 못해본 것이다. 그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러니 본다고 아는 게 아니다. 


지금도 국내선 항공편으로 출장가려면 집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화장실을 간다. 그 큰 터미널을 통틀어 변기가 스무 개가 안 되지 싶다. 그 중 반만 소변기로 바꿔도 전체 변기 수는 배가 훌쩍 넘을 텐데. 자기네들이 소변기를 쓰지 않으니 알바 없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무슨 비즈니스 하기 좋은 국가라고 자랑하고, 관광대국이 되겠다고 설치는지 모르겠다. 외국인의 불평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불평하다가 붙잡혀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다음 번 연재가 안 올라오거든 애들 좀 풀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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