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키 빈 나세르 빈 압둘아지즈 왕자

by 박인식

휴일에 소일거리 삼아 읽으시라고 올립니다.


오늘 페이스북에 12년 전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우디 트루키 왕자의 클래식카 컬렉션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트루키 왕자는 지금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11월 벌인 리츠칼튼 호텔 사건 때 감금당한 사우디 거부 11명 중 한 사람입니다. 당시 부정 축재자를 처단한다는 기치를 내걸기는 했습니다만, 사우디 부자 중에 부정 축재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왕세자 자신도 다르지 않으니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코미디였지요. 가둬놓고 돈 뺏는 깡패나 다를 게 없는.


트루키 왕자는 그야말로 억만장자였습니다. 재산이 우리 돈으로 조 단위를 가뿐히 넘는. 제 느낌으로는 재산 규모가 그것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자궁(Prince Palace)이라고 불리는 저택이며, 3천억 원에 달하는 보잉 737 전용기, 수퍼요트 ‘사라’까지 말입니다. 그 저택에서 열린 회의에 몇 번 참석했고, 수퍼요트 ‘사라’는 구경만 하고 타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일한 사우디 현지법인의 파트너였던 이는 그 전용기를 타봤답니다. 사우디 3대 도시인 리야드, 제다, 다란에 거대한 저택이 있었고, 런던 하이드파크 근처 석시스 스퀘어에 있는 저택도 유명합니다. 캘리포니아와 바르셀로나에도 저택을 가지고 있었지요.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줄 알았습니다. 왕자라면 백마 타는 젊은이인 줄만 알았는데 구부정한 모습으로 회의실에 들어오는 그를 보고 실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회의에서 우리가 설명한 복잡한 내용을 단번에 파악하고 핵심 질문을 날카롭게 쏟아내던 모습을 보면서 공군 사령관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공군 사령관 출신으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조금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사실 사우디에 현지법인을 세우게 된 배경에 이 같은 그의 이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 사우디 환경부는 의아하게도 국방부 산하 기관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공군 산하에 있던 기상부대가 기상청, 기상환경청을 거쳐 정부의 환경부로 확대 개편된 것이지요. 조종사 출신 공군 사령관이던 그가 공군 산하 기관의 장이 되었다는 게 어딘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짐작하신 대로 좌천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좌천의 배경에 ‘알야마마 스캔들’이 있습니다. 사우디가 영국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에서 전투기 도입할 때 일어났던 뇌물 스캔들이지요. 뇌물 액수만 10억 파운드, 거의 2조 원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의 거래였습니다.


1985년부터 20년 동안 사우디에 전투기를 비롯한 무기를 공급하는 430억 파운드(85조 원) 규모의 알야마마 사업은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맞붙었던 세기의 거래로, BAE는 마거릿 대처 정부의 지원으로 이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몇 년 후, 이 계약의 배경에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는 주장이 불거져 영국 감사원이 감사에 나섰고 1992년에 조사를 마쳤는데도 예외적으로 보고서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불거졌지만 2006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사우디와 정보 협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종결시켰습니다. 2010년에는 미국 법무부가 이 거래와 관련해 BAE에 4억 달러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어떻게 미국 법무부가 이 일을 문제 삼았는지는 모르지만, 뇌물 수수가 아닌 허위 회계 처리만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이었답니다.


사우디 국방부는 사우디를 건국한 초대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 중 막강한 힘을 가졌던 술탄 왕자가 1963년부터 48년이나 장관을 역임한 그의 영지였습니다. 트루키 왕자에게는 작은아버지이자 장인이었지요. 사촌과 결혼했으니 근친혼인 셈인데, 사우드 왕가는 워낙 그랬습니다. 작은아버지이자 장인이 주인이었던 국방부에서 공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니 눈치 볼 게 뭐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술탄 왕자는 2005년부터 사망한 2011년까지 제1 왕위계승자인 왕세제(Crown Prince)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술탄 왕세제도 국제적인 비난을 감당하지는 못했던지 트루키 왕자를 공군 산하의 기상청장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가 하루아침에 무기 거래의 정점에서 추방되자 그를 배경으로 사업하던 이들도 역시 난관에 부닥쳤지요. 기상청은 곧 기상환경청으로 확대되었고 제가 부임할 때는 국방부에서 독립해 정부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기 거래하던 이들이 환경부에서 할 일이 뭐 있었겠습니까.


그러던 차에 1991년 걸프전으로 유전이 파괴되어 엄청난 환경오염 피해를 본 사우디와 쿠웨이트 해안에 대한 복원사업이 생겼습니다. 유엔이 전쟁을 일으킨 이라크에서 받아낸 전쟁보상금을 재원으로 추진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해안 오염복원사업을 투르키 왕자가 좌우하게 된 것이지요. 실제로 그 사업을 성사시킨데 투르키 왕자가 적지 않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기대고 있던 무기 거래상들이 환경오염 복원업체를 찾아 나섰고, 그것이 우리 회사의 현지법인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3년 투르키 왕자가 환경청장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당시 압둘라 국왕의 경쟁자였던 술탄 왕세제가 2011년 서거한 이후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암담하기는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우디에서 배경 없이 사업을 따낸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았거든요. 불길한 예감은 늘 그랬듯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후임으로 부임한 장관이 대놓고 뇌물을 요구했지요. 그것을 거절하고, 그러자 정당하게 일한 공사비 지급이 보류되고, 수년에 걸친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수백억 원을 받지 못해 현지법인이 고사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공하고 공사비 내놓으라고 씨름한 게 2년, 그 후로 소송에 5년. 사우디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게 만든 배경이지요.


며칠 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주미 사우디 대사인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공주가 트럼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보도되었더군요. 리마 대사가 바로 트루키 왕자의 며느리였고, 그 결혼식에 BAE 뇌물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말고도 BAE는 트루키 왕자의 아내인 누라 공주에게 수억 원짜리 롤스로이스를 자기네 화물기로 실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누라 공주는 쇼핑광으로도 유명하다는군요. 쇼핑한 물건이 너무 많아서 런던에서 사우디까지 실어 오기 위해 대형 화물기를 빌려야 할 정도였답니다.


이 글을 쓰느라 확인해보니 주미 사우디 대사인 리마 공주는 트루키 왕자의 아들인 파이살 빈 트루키 왕자와 결혼했다가 2012년 이혼했네요. 슬하에는 1남 1녀. 사우디에 왕자와 공주가 수만 명이라는데 리마 공주야말로 진정한 공주가 아닐까 합니다.


리마 공주는 미국 대사로 임명되기 전부터 제게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왕실의 여성 인사에 대한 동정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사우디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였지요. 사우디 체육위원회 여성 분과에서 오래 일했고, 유방암 퇴치 운동으로도 유명했습니다. IOC 위원이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혈통은 어마어마합니다. 외할아버지는 3대 파이살 국왕이고 친할아버지는 48년이나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술탄 왕세제, 아버지는 1983년에서 2005년까지 미국 대사를 역임한 반다르 빈 술탄 왕자, 남동생은 칼리드 빈 반다르 영국 대사. 리마 공주가 미국 대사로 부임한 것이 2019년이었군요. 트럼프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니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서 만났을 때 반가웠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트루키 왕자 이야기로 시작한 게 리마 공주 이야기로 끝맺게 되었습니다. 참, 트루키 왕자는 2021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병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마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당한 수모가 그의 명을 재촉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우디 사람들이 체면에 무척 민감하거든요. 왕가 사람들은 더욱. 망신당하고는 못 사는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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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jpg <전용기 보잉 737>
요트.jpg <62m 슈퍼요트 Sarah>
저택.jpg <캘리포니아 저택>
클래식카 컬렉션 1.jpg <Class Car Collection>
클래식카 컬렉션 2.jpg
클래식카 컬렉션 3.jpg
클래식카 컬렉션 4.jpg
클래식카 컬렉션 5.jpg
클래식카 컬렉션 6.jpg
reema 1.jpg <주미 사우디 대사 Reema bint Bandar bin Sultan 공주>
reema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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