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2025.02.26 (수)

by 박인식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 곧 은퇴라고 생각했다. 일의 부담에서 놓여났으니 마음이 가벼워야 할 텐데, 그 기쁨은 생각보다 얼마 가지 못했다. 미뤄두었던 일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둘이 아니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기는 했다. 간혹 상실감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저 통과의례려니 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할이 크든 작든 세상을 돌리는 수레바퀴 중 하나였는데 어느 사이에 그 수레 위에 얹혀 가는 사람이더라는 것이지. 잉여 인간이 된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칠십을 넘긴 나이에도 일하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모양이다. 지난 한 해 현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 기뻤다. 지금은 본사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해 하루하루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당장 보름 안에 마쳐야 할 일이 있어 마음이 몹시 바쁘다. 생각보다 진도가 더딘 게 걱정스러웠던지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렇다고 일찍 나가자니 뒤에 출근하는 후배들이 불편해할까 싶어 그러지도 못하고 이런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오늘 말씀을 되새겨본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다.”


온전하기를 바라기야 하겠는가마는, 쉬지 않고 악이며 독을 쏟아내지는 말아야 하리라.


KakaoTalk_20250226_05245706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02.21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