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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3.26 (수)

by 박인식

대학 입학하는 날 기차 안에서 선배를 만났다. 당시는 학교 배지를 달고 다닐 때여서 학교를 구분하기 쉬웠지만, 입학하러 가는 길이니 배지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런데도 교복과 교모 때문에 아는 사람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흔히 모택동 모자라고 하는 걸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 당시 나는 부모님이 계시던 경기도 문산으로 내려가 있었고,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학교까지 기차로 통학했다. 그때 기차 통학하는 이들 중에 선배가 몇 분 계셨다. 통학생끼리 한번 모이자는 말이 나왔고, 마침 내가 입학한 터여서 첫 모임이 내 신입생 환영회가 되었다. 신입생이었으나 그런 까닭으로 오십 년 넘게 이어온 동아리의 창립 회원이 된 것이다.


십수 년 서울을 떠나 살다 보니 모든 인연이 다 끊겼다. 이 모임의 선배님들을 마지막 뵌 것이 자식 혼삿날이었으니 이미 십오 년이 넘었다. 그날 뵙지 못한 분은 이십 년이 넘었고. 어지어찌 연락이 닿아 오늘 선배님들을 뵈었다. 그중 좌장이신 선배께서는 이미 팔십이 되셨고 모임을 마련한 막내도 이미 칠십이 되었다.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사장을 끝으로 은퇴하신 선배께서는 모든 면에서 내 본보기셨다. 모든 월급쟁이의 꿈이 사장일 것이니,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으로 은퇴하신 그분을 본보기로 여길 이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단지 한 회사에서 오래 일했고 끝내 정상에 올랐다는 것만이 이유였던 건 아니다. 꽃 가꾸는 걸 좋아해서 원예 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취미로 시작한 서예로 전시회를 열었고, 골프는 시작한 지 2년 만에 싱글이 되었다. 조치훈이 일본 바둑을 제패했을 때 회사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기보 해설도 했다. 모임에서 축구라도 할 양이면 언제나 유니폼에 축구화를 신고 나타났을 뿐 아니라 운동장에서 그를 막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수십 년 만나는 동안 딱 한 번 화를 냈고, 모임 시작하고 십 년 넘도록 밥값이며 술값을 혼자 감당했다. 신혼이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턱없는 일이었는데, 밥값이며 술값 내는데 한 번 망설인 일이 없고, 민망하게도 우리는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미 팔십이 되셨으나 여전히 정정하신 모습을 뵈니 어찌나 반갑던지. 한 해 아래 후배는 칠십이 되어서도 막내를 면치 못했으나, 오늘 그것조차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는 걸 보니 그 또한 어찌나 고맙던지 모른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오늘 모인 이들이 공통점이 여럿 있었다. 다섯 명 모두 한 직장에서 경력을 마쳤거나 많아야 두 곳이었다. 나는 졸업하고 국책연구소에 3년 근무하고 지금 회사로 옮겼고 막내도 그 정도였는데, 선배님들은 모두 첫 직장에서 은퇴를 맞았다. 이야기 끝에 전화로 연결한 후배 하나도 한 길을 걷다가 지금 국책 연구원 원장으로 마지막을 수놓고 있다. 좌장이신 선배께서는 민간기업에서 사장으로, 또 한 분은 공기업 사장으로, 또 한 분은 총장으로 경력을 마무리하셨다. 나는 그분들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처지이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 중에 가장 오래 일하지 않냐는 덕담을 듣고는 자리 파할 때 아낌없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 젊은 날 본보기셨던 선배님은 지금도 본보기로 남아계셔서 말씀을 듣는 내내 즐거웠다. 내년 초에 신년 덕담 하나 써서 보내주십사 부탁드렸다. 오래전에 보내주셨던 신년 축하 글씨는 사우디까지 가지고 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그것마저 두고 와야 해서 몹시 서운했는데, 돌아오는 신년에 글씨 하나 써주신다니 이번에는 표구해서 한쪽에 걸어놓으리라.


그 선배님 일로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은 게 하나 있다.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 올랐으니 그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다 싶었지만, 물러나는 게 유쾌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선배께서는 몹시 서운하게 회사를 나오게 되어서 분을 삭이느라 한동안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다른 선배님과 함께 한 주일쯤 사방팔방으로 유람이나 하자고 말씀드렸다. 위로를 빙자한 자리였지만 사실 위로보다는 사원으로 시작해 사장으로 끝내는 동안 얻은 지혜를 듣고 싶었다. 휴가를 얻지 못해 불발에 그쳐 지금도 몹시 아쉽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을 것인데.


그때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없으나, 그때가 참 아름답기는 했다. 누구나 자기만큼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십 년 가까이 선배이셨던 그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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