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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5.09 (금)

by 박인식

오랜만에 반창회로 모였다. 졸업하고 50년이 넘었어도 만나면 여전히 아이들이다. 모이기 편한 곳으로 정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음식점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하나같이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다. 여성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모두 우리 같은 모임인지 그중 하나가 일어서서 한마디하고, 박수 한 번 치고, 위하여 한 번 부르짖는 건 이 테이블이나 저 테이블이 마찬가지다. 그게 꼴사나워 보여서 우리는 그따위 짓 안 하기로 했다.


종로3가에 가면 송해 거리가 있다. 돌아가신 송 선생 흉상이 얌전히 자리 잡은 그곳은 모퉁이 하나로 젊은이 거리와 늙은이 거리로 나뉜다. 다행스럽게 늙은이 거리도 그다지 칙칙하지는 않더라. 어차피 백수 이긴 매한가지일 터인데 뭐 한다고 굳이 불타는 금요일 저녁에 그 복닥거리는 곳에서 만나자는 건가 투덜거리기는 했다마는, 활기찬 젊은이들로 가득 찬 거리를 걷다 보니 그 에너지라도 받으라고 이곳으로 불러낸 게 아닌가 싶어 오히려 고마웠다.


일곱이 둘러앉아 한 시간 동안 마신 게 꼴랑 맥주 세 병이었다. 혼자서 소주 세 병을 마다하지 않던 인간 일곱이 모였는데 말이다. 못 마실 정도까지 망가진 건 아닌데 하나 같이 몸을 사린다. 하긴 나도 마시는 시늉만 하리라 생각하고 나갔으니.


그렇게 파하기는 섭섭해 차나 한 잔 하자고 자리를 옮겼다. 맨정신에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했는데, 웬걸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씩 놓고서 한 시간 넘게 시끌벅적했다. 다른 손님들이 흉깨나 봤을 것이다. 이래저래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픈 밤이었다. 이렇게 사그라드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재작년인가 졸업 50주년 행사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구동성으로 다음은 60주년이 아니라 55주년이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60년 행사 때까지 남아있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자고. 다시 그 이야기 나누면서 좀 더 자주 보기로 했다. 물론 말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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