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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5.10 (일)

by 박인식

개신교회는 클수록 예배가 물 흐르듯 막힘이 없이 진행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데다가 잘 훈련된 찬양대에 오케스트라까지 갖추고 있어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잘 정돈된 공연 한 편을 본 느낌마저 든다. 예배의 주체가 되어야 할 내가 관객의 입장으로 한발 물러나 있는 셈이다.


루터교회는 예전이 한국의 여느 교회와 다르다. 구교와 신교 중간 그 어디쯤일 텐데, 루터교회는 개신교회이면서도 예전은 오히려 구교인 가톨릭에 가깝다. 그것이 내가 루터교회에 출석하기로 마음 먹은 마지막 순간까지 걸림돌이 되었다.


루터교회의 예전이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그 중심에는 성찬이 자리 잡고 있다. 매주 갖는 성찬식이 족히 이십 분은 걸린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여느 개신교회의 예배가 그리워질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바로 그 성찬식이 오히려 루터교회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간 드렸던 예배는 예배 순서를 맡은 이가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루터교회는 내가 직접 하나님을 만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개인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주일 설교를 통해 그것이 루터교회 예배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누가 선명하게 설명한 일은 없었지만, 몸과 마음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루터교회에서 말씀과 성찬은 하나님의 은총의 두 가지 도구라서 예배의 두 축을 이룹니다. 이 둘은 모두 말씀이라는 면에서 같지만, 약간의 구분이 있습니다. 선포된 말씀인 설교가 ‘일대 다수’라면, 성찬은 언제나 ‘일대일’ 형식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루터 신학에서는 그 때문에 설교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찬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깨닫고는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제 설교로 그간 짐작하지 못했던 다른 사실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많은 교회에서는 회중석으로 떡과 잔을 돌리는 것과는 달리 루터교회에서는 반드시 앞으로 나와서 떡과 잔을 받는데,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과 일대일의 관계라는 것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동시에 성찬 받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 것이 ‘세례받은 사람은 숨어 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적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 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식탁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앞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삶도 그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자랑이기도 하고 동시에 족쇄이기도 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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