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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여행기 (2)

by 박인식

남도 음식으로 말하자면 그게 어디 목포에 한한 일일까. 여수, 순천, 광주도 그렇고 전주도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골치 아픈 문제로 출장 갔다가 아무거나 한 끼 때우자는 생각으로 골랐던 김제 붕어찜도 놀라웠다. (그때까지 붕어를 먹어본 일이 없었고, 동행이 고른 거였지만) 결국 목포를 고른 건 남도 음식 말고 다른 게 더 있었다는 말이다.


대전을 심심한 도시의 대명사로 부르기도 한다. 내 말은 아니고, 대전 출신 방송인이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근대한국의 대표적인 계획도시이다 보니 전해 내려오는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성심당 빵집도 생기고 한화이글스의 약진으로 훨씬 재미있어진 거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도 그런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다. 대전은 업무 때문에 가는 곳이었는데, 볼 일 마치고 딱히 머물만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목포라고 하면 당연히 ‘목포의 눈물’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목포는 사십 년도 넘은 옛날에 출장 가는 길에 잠깐 들린 게 전부인데도 삼학도며 유달산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어느 정치인이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거리를 콘텐츠로 만들어보겠다면서 개발을 공언해 잠시 소란이 일었던 일이 있다. 그때 소개되던 내용이 무척 흥미로워 보였다.


나는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중앙청을 철거한 게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 아직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오욕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오욕의 역사라고 해서 우리 역사가 아닌 게 아니지 않은가. 경복궁을 복원해 놓으니 좋기는 하더라만, 복원이 얼마만 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바람직한 방법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지우는 일은 이처럼 이념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뿐 아니라 개발이나 경제적 관점에서도 주변에서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는 생활환경을 이념이나 경제적 효용가치로만 판단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도 철없는 소리나 한다고 타박 들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포의 이야깃거리는 구도심의 근대문화 유적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달산 자락에 세워졌던 일본영사관 자리(현 근대역사관 1관)와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동양척식회사 자리(현 근대역사관 2관), 동양척식회사에 맞서 우리 자본으로 세운 호남은행 목포지점(현 대중음악의 전당),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 오십 년도 훨씬 이전에 서울에 남아있던 같은 종류의 흔적을 기억하는 내게는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물론 이것을 개발에서 뒤쳐진 모습으로 여겨 이런 이야기 꺼내는 자체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여기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 그런 정서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는 해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런 모습도 ‘레트로 감성’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콘텐츠가 되기도 하지 않나.


목포 구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이런 흔적은 나같이 오래전 기억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일인데도 그곳에 나이 든 사람들보다는 젊은이들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근대 문화유산의 출발점인 근대역사관 1관은 1898년 목포에 일본영사관이 설치되면서 들어선 건물로, 이후 목포부 청사, 광복하고 나서는 목포시청, 목포 일본영사관, 목포문화원을 거쳐 2014년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내부에 특별한 유적이랄 것은 없었지만 옛 건물과 거리를 재현해 놓은 모형으로 우리 근대사의 한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목포를 찾았다면 이곳부터 들르는 걸 추천할 만하다. 이 거리 모형을 머리에 넣고 실제 거리를 둘러보니 좀 더 쉽게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건물 뒤편에 남아있는 방공호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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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 앞에 국도 1, 2호선 기점 비석이 서 있다. 지금은 기점을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겼지만, 워낙 우리나라 국도 1호선과 2호선의 기점이 바로 목포이다. 1호선은 목포-신의주, 2호선은 목포-부산이거든. 어느 나라나 하나 같이 남북 도로에 홀수, 동서 도로에 짝수 번호를 매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1호선인 목포-신의주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가면서 3호선, 5호선, 7호선이 주축을 이루고, 그리고 그 중간에 두 자릿수 번호가 들어간다. 국도 7호선이 바로 7번 국도로 잘 알려진 동해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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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에서 몇 건물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2관은 동양척식회사로 1921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1관인 일본영사관 건물은 붉은 벽돌로 된 2층 건물인 데 비해 2관인 동양척식회사 건물은 르네상스식 석조 2층 건물로 오히려 1관보다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에 딱히 볼 것은 없고, 대형 금고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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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관 1, 2관에서 목포역 쪽으로 대중음악의 전당이 있다. 호남은행(후일 조흥은행) 목포지점이었던 건물로, 붉은 벽돌 2층 건물이다. 근대역사관보다는 작지만 모습은 오히려 단단하고 깔끔하다. 마침, 목포의 대명사인 목포의 눈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난영 선생의 음반과 악보, 그 자녀들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의 활동상이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천정을 모두 개방해 놓았는데, 건축에 사용한 목재 상태나 구조가 무척 짜임새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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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 무척 많은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었다. 모두 2층을 넘지 않고, 대부분 목조 건물이고 간혹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있는 곳도 있었다. (수리하느라 다 뜯어놓은)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은 지 백 년은 넘은 건물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하긴 유럽에는 수백 년 된 목조 건물이 드물지 않은데 고쳐서 잘 쓰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재개발은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싶다.


그 건물들을 보다 보니 수리하면 좋은 콘텐츠가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마 그런 생각은 모두 같았는지, 그 거리를 개발한다는 게 크게 이슈가 되기도 하지 않았나. 그걸 공공개발로 추진하겠다던 이가 그곳에 자기 소유 건물을 갖고 있어서 문제가 되었지만, 건물을 갖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겠지 공공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거기 건물을 사기야 했겠나. 그렇기는 해도 공인으로서 이해 상충을 고려하지 못한 건 서투르다고 평가할밖에. 하도 변화무쌍한 사회이다 보니 그 바람이 과연 몇 년이나 지속할지 모르고, 그걸 보고도 투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경리단길처럼.


코롬방제과 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어서 기대하고 들어갔지만, 성심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만 하고 나왔다. 색다른 빵이 있거나 다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이 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빵집이 아닌가 싶었다.


근대역사관 주변에 분위기 좋은 커피집이 몇 곳 있다. 그중 유달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곳에서 카푸치노 한 잔. 어쩌면 분위기 좋은 집을 다녀본 경험이 적은, 거의 없는 노인의 관점일 수 있으니 너무 믿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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