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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여행기 (1)

by 박인식

아내 칠순에 뭐가 선물이 될지 생각하다가 목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미리부터 이야기했다가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며칠 남겨 놓고 비로소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내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연구소 근무 마지막 출장이 목포 앞바다에 있는 압해도였다. 출장길에 들렀으니 제대로 기억하는 것도 없고, 기억한다고 한들 사십 년도 넘은 일이니 그게 그대로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한번 스치듯 지나간 게 전부인 낯선 도시, 이야깃거리가 풍성하고 남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이게 그곳을 찾는 이유이자 기대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구글이 아닌 유튜브로 검색한다더니, 이번이 딱 그런 경우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게 주로 음식에 대한 것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곳으로 추천할 만하다는 글이 여럿 보였다. 목포의 눈물로 대변되는 대중음악의 산실, 게다가 해양박물관에 신안에서 발굴한 해저 유물도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기대한 건 역시 음식이었다.


아직 원자력발전소 후보지였던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에 출장간 것이 80년 겨울이었다. 법성포까지만 버스가 다녀서 그곳에서 현장에서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식사하기로 했다. 출장비도 있겠다, 음식으로 유명하다니 욕심을 내어 그럴듯한 곳을 찾았다. 홀은 없고 방으로 안내하는데 식탁이 보이질 않았다. 메뉴도 없었다. 뭐가 되느냐 물으니 백반 한 가지라고 했다. 게다가 주문하고 이삼십 분이 넘도록 기척도 없었다.


백반 한 상 차리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할 무렵 두 사람이 음식을 가득 차린 교자상을 맞들고 들어왔다. 다른 사람 하나가 작은 상에 몇 가지 더 차려 들고 들어와 생선을 먹기 좋게 발라놓고 나갔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얼마짜리 음식인 줄 짐작이 가지 않아서였다.


당시 하루 출장비가 9,500원이었다. 숙박비 5,000원에 식대 1,500원씩 세 끼. 서울에서 한 끼 식대가 1,000원을 넘지 않을 때였으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렇기는 해도 5,000원 정도면 군말 없이 내고 나가고, 그보다 비싸면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밥 한 그릇 먹자고 찾아온 손님한테 그 정도 비싼 음식이라면 미리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교자상 하나를 가득 채운 음식 중 가짓수 채우려고 올린 음식은 없었고, 하나하나가 다 훌륭했다. 줄잡아 서른 개쯤 되지 않았을까. 거기에 술만 올리면 그냥 술상이 될 만한 상차림이었다. 처음 받은 진수성찬 독상을 마음껏 즐기고 나오는데 밥값이 1,500원이라고 했다. 얼른 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왔다. 잘못 계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현장 선배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값이 맞고, 실제로도 거기에 술만 시켜 술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여수, 순천, 부안. 현장이 몇 번이나 생겼던 영광에서는 외국인 기술자들을 초대해 대접했는데, 그들 모두 감탄하느라 바빴다. 음식이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밥집에서도 맛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호남지방에 출장 갈 일이 생기면 나나 없이 가려고 들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걸로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남도 음식에 대한 기대가 앞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유튜브에는 그런 음식이 아주 드물었다. 그렇게 해서 한정식 하는 집 하나, 낙지탕탕이라는 요령부득의 음식 하나, 게살 비빔밥도 목록에 올렸다. 시장통에 갈치조림 한다는 집을 하나 찾았는데, 아마 그 집이 기대했던 음식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에 목포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중화루 중깐까지. 일박이일 일정에 다섯 끼밖에 먹을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도착하자마자 낙지탕탕이 하는 집을 찾았다. 생각만큼 크게 붐비지는 않았는데, 월요일이어서였단다. 맛이 있기는 했는데 남도 음식의 깊은 맛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게 남도 음식인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반찬으로 나온 열무김치는 일품이었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으면서 깊이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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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품격 있다는 한정식집을 찾았다. 아내에게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고른 곳이었는데, 정식은 4인부터라고 했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예약하겠다고 했을 때 그런 말이 없었는데. 실망이 컸다. 둘러보니 차려낸 음식도 기대에 영 미치지 못했고. 양해를 구하고 나와 숙소에서 추천한 횟집을 찾았다. 사진으로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사진만 그랬다. 회도 형편없고 음식은 간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서울에서도 그보다 싸고 맛있는 집은 사방에 널렸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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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가 맛을 잃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데, 이젠 맛도 제대로 못 느끼는 건 아닌가 하는. 옛 어른들이 나이 들면 맛있는 게 없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실망스러워 다음 날 아침 갈치조림을 먹기로 한 걸 취소하고 그냥 호텔 조식으로 대신했다.


오전에 목포 구시가를 돌아보고 줄 서서 먹는다는 게살 비빔밥집을 찾았다. 양념으로 버무린 게살에 반찬 두어 가지가 전부였지만 음식이 모두 깔끔했다. 그게 전부였다. 나오면서 역시 입맛을 잃은 게 맞는 모양이라고 했다. 남도 음식이 변했다 해도 이 정도로 맛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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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하면서 페북을 열었는데 장인용 선생께서 한 곳을 추천하고 전화번호까지 남겨 놓았다. ‘만선식당’. 구시가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보여서 걷다 보니 삼십 분 가까이 걸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았는데 시원치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곳을 추천했을까, 시원치 않으면 물어 달라면 돼지 그러면서.


병어조림을 한 숟갈 뜨면서 바로 깨달았다. 남도 음식이 변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입맛을 잃은 것도 아니라는 걸. 집은 허름해도 맛으로 벌충해 줄 거라고 하시더니 과연 그랬다.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주인이 참 맛있게 먹는 게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병어도 병어고, 함께 끓인 우거지와 감자에 스며든 맛은 일품이었다. 쌉싸름, 달짝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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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병어조림을 시키고 다른 손님들은 모두 밴댕이회를 시켰다. 지금이 한철이고 밴댕이회는 그 집이 으뜸인 모양이었다. 아내도 궁금해했는데, 받아놓은 병어조림도 남길 만큼 양이 많아서 아쉬움을 한가득 남겨 놓고 돌아서야 했다. 어지간해서 그런 이야기 않는 아내가 아쉬워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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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인용 선생께 고맙다는 인사 대신 원망을 쏟아놓았다. 진작 알려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왜 이제야 알려줘서 한 끼밖에 못 먹고 오게 만드냐,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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