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여행하기로 한 건 남도 음식과 목포만의 이야기 때문이었지 경치나 자연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직장인으로 가장 오래 일한 분야가 원자력발전소와 지하유류저장시설이고, 두 시설 모두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일하면서 바다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없을 수 없었는데, 그 기준에 따르면 목포 바다는 딱히 기대할 게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를 필명으로 쓸 만큼 바다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게는 금 하나 긋는 것으로 하늘과 바다를 나눌 수 있는 동해라야 바다인 것이지, 사방이 가로막힌 서해나 남해는 바다일 수 없다. 탁 트인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바닷가는 시원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아무런 가림막 없이 온몸으로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힘겹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바다가 싫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바다 때문에 일로 인해 생긴 중압감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아마 내 핏속에 아버지 고향인 동해의 바닷물이 절반을 채우고 있을 것인데, 그것도 동해만 바다로 여긴 까닭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짐작했던 대로 목포 바다는 내게 큰 강과 다르지 않았다. 파도도 없고, 바닷바람도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목포를 여행하기로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몇 년 전에 해상케이블카가 놓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도 음식과 목포만의 이야기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터에 잘됐다 싶어 이용 후기도 읽어보고 유튜브 영상도 몇 편 찾아봤다.
국내에서 타본 거라곤 남산 케이블카와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밖에 없는데 두 곳 모두 출발점에서 도착점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짧은 거리를 오갈 뿐이다. 찾아보니 남산은 6백 미터, 길다는 권금성도 1킬로미터를 조금 넘는다. 그런데 목포 케이블카는 3킬로미터가 훌쩍 넘는다. 더구나 코스가 직선도 아니고 유달산을 끼고 방향을 몇 번이나 틀 뿐 아니라 고하도까지 새까만 높이로 바다를 건넌다.
목포에 도착해 하당에서 점심을 먹고 인근에 있는 갓바위를 찾았다. 첫날은 갓바위에서 출발해 해양유물전시관을 들른 후, 케이블카로 고하도를 다녀와서, 신시가지 평화광장에서 바다 분수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첫날 그렇게 외곽으로 돈 후 둘째 날 느긋하게 구시가지에서 시간을 보내면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갓바위를 돌아보고 걸어서 해양유물전시관에 도착하니 월요일이 휴관일이란다.
하는 수 없이 북항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왕복 24,000원. 바닥이 훤히 보이는 크리스털 캐빈은 29,000원. 아낄 일이 아닌 것 같아 크리스털 캐빈을 고르고 경로 할인 받으니 27,000원.
한 마디로 기가 막히더라. 산을 타고 올라 유달산 정상에서 방향을 틀어 바다로 내려간 케이블카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까맣게 솟구친 주탑을 지난다. 주탑을 지나 내리꽂히듯 하강하는 캐빈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때문에 발바닥이 간질간질했다. 케이블카에서 찍은 동영상과 사진만 수십 장에 이른다. 설명으로 부족할 듯하니 직접 타보시라.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목포대교와 다도해도 장관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케이블카의 압권은 노을이라고 했다. 서해라면 단연 노을을 꼽을 만하니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노을이라는 말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능히 짐작하겠더라. 일정이 빠듯하니 그건 상상으로 대신하고.
케이블카가 고하도를 건너간다고 해서 고하도에서 할 거리를 찾았는데, 음식점도 한참 나가야 하고 승강장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전망대가 하나 있더라만, 그곳에나 들렀다 바로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케이블카가 고하도에 다가가는데 바닷길을 따라 데크가 꽤 길게 설치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짐작으로 1킬로미터는 되어 보였다. 고하도 승강장에서 능선으로 올라와 다시 바닷길 데크까지 가는 게 만만치 않기는 했는데, 능선에서 데크까지 이어지는 경사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언제부턴가 뛰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계단은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피한다. 의사가 내 관절은 이미 소모품 상태에 이르러서 저금해 놓은 거 꺼내 쓴다는 생각으로 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을 내어보기로 했다.
고하도 승강장에서 150계단을 걸어 능선에 올랐다. (계단 칸칸에 150계단을 오르면 마치 150세까지 살 것처럼 써놨다. 세상에...) 거기서부터 전망대까지는 평지였다.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을 본떠서 만든 전망대는 칠팔 층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잠깐 망설이다 오르는데, 계단 중간중간에 오른 수고가 아깝지 않을 거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과연 그랬다.
바닷가 데크 길이 욕심이 나기는 하는데 걷는 게 부담스러워 잠깐 망설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맛만 보고 올라올까. 전망대를 관리하는 분께 물어보니 섬 끝까지 내쳐 평지이니 가볼 만하다고 했다. 걸어보니 대체로 그랬다. 마지막 용머리에 깔딱고개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용머리이니 그 정도 수고는 들이는 게 맞겠다 싶어 길을 알려준 전망대 관리인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용머리에서 내려가면서부터 데크를 따라 경사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는 동안 내내 감동이었다. 표현이 짧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겠으니 이것도 직접 경험하시라.
걷는 내내 모처럼 오래 걸어 느끼는 뻐근함마저 상쾌했다.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 승강장에 내려 목포 구시가지며 다도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장관이었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유달산 전망대 구경도 하겠더라만, 과욕은 화를 불러올 수 있으니. 그저 승강장 전망대에서 아내와 함께 안내판에 표시해 놓은 걸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살펴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산 케이블카가 15,000원이란다. 그러면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15만 원쯤 받아야 하겠다. 그런데 다시 강조하거니와 고급형인 크리스털 캐빈도 29,000원, 경로 할인은 27,000원이다. 이만하면 거저 아니냐. 갈지 말지는 여러분이 결정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