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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것저것

목포 여행기 (4)

by 박인식

케이블카 타고 고하도를 다녀오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풍경을 즐겼다. 나름 애써 찾은 곳에서 저녁을 먹고 평화광장에서 바다 분수를 보면서 첫날을 마무리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약까지 했던 식당에서부터 계획이 틀어지더니 분수마저 월요일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급하게 수소문해서 찾아간 횟집에서는 솜 씹는 것 같은 회에 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식사가 나와 부아를 꾹꾹 눌러야 했다.


이곳 분수 이름이 ‘춤추는 바다 분수’란다. 맛있게 저녁 먹고 선선한 바닷바람 맞으며 춤추는 바다 분수 보면서 맥주나 한잔 나누려 생각했는데, 근처에도 가지 못한 모습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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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구경할 생각으로 이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예약하다 보니 뜻밖에 조식이 포함된 호텔이 많았다. 정가는 십만 원이 넘어도 이런저런 할인으로 예약 사이트에 올라온 호텔 이십여 곳 중에서 십만 원이 넘는 경우는 한두 곳에 지나지 않았고, 그 대부분이 조식 포함이었다. 두 사람이면 조식값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다. 우리야 남도 음식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왔으니 조식 포함하지 않은 호텔을 골라야 하는데 그게 더 어려웠다.


저녁 식사에 너무 실망하기도 했고 아내가 뭐 하러 굳이 먼 곳까지 가서 아침을 먹느냐 해서 다음 날 아침 그냥 숙소에서 주는 걸 먹기로 했다. 내려가 보니 토스트 해 먹을 수 있도록 몇 가지 갖춰놓은 게 전부이기는 했다. 그래도 굳이 아침부터 차려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것도 괜찮겠다.


오래전에 출장 다닐 때 같은 값인데 숙소도 남도 쪽이 훨씬 넓고 깔끔했다. 남도 음식이야 워낙 이름난 것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같은 값의 숙소도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의아했다. 혹시 이곳 호텔에 조식을 포함하는 게 그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곳 특유의 인심은 아닌지 모르겠다.


숙소에서 나와 바닷가를 걸었다. 요즘은 곳곳에 걷기 좋은 길이 많고, 그 길로 걷고 뛰는 사람도 많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시간 지나면서 삶이 조금씩 나아져 가는 건 사실이다. 그런 길 만들 생각을 하고, 만들어 놓은 길 열심히 다니는 것도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바닷가 따라 걷다가 잠깐 사이에 갓바위를 거쳐 해양유물전시관에 이르렀다. 신안 유물선 때문에 보러 갈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발굴한 유물선이 스무 척이 넘는다. 안내판에서 200톤이 넘는 신안 유물선에서 건져낸 유물이 수백만 점이라고 읽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유물이 2만3천 점이고 동전이 8백만 개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전 8백만 점은 유물에 포함된다는 건지 아닌지, 공식적인 총 수량은 얼마로 보아야 하는지, 요령부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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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스웨덴 출장길에 스톡홀름에 있는 바사 박물관을 가본 일이 있다. 국왕까지 참석해 성대하게 출항했다가 배웅객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대로 침몰해 승객 대다수가 사망한 바사호라는 배를 전시한 곳이었다. 배를 너무 좁고 높게 만들어 복원력이 부족해 파도에 맞은 후 그대로 침몰한 것이다. 남들은 배에 정신이 팔렸더라만 나는 물에 빠져 죽은 승객 생각에 으스스하더라. 신안 유물선을 보면서도 그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지금도 200톤급 선박이면 작은 배가 아닌데, 아무리 찾아봐도 승객에 대한 정보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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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수만 점이니 별거 별거 다 있던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자단목이었다. 아열대산 최고급 가구용 목재라는 설명대로 물속에 700년이나 있었는데도 만져보니 단단하기 이를 데 없다. (만져보라고 몇 곳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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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볼 것도 풍성하고 탁 트인 로비에서 바다를 보는 것도 아주 괜찮다. 이것 때문에 목포를 찾을 것까지야 없겠지만, 목포에서 즐길 것 여럿에 충분히 무게를 더할 만하다.


여행기 정리하다 보니 해양유물전시관 앞에 남농 기념관이 있었다. 이런... 유물 보고 나오면서 앞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확인했는데, 남농 기념관은 미처 확인 못했다. 그 좋은 곳을 놓쳤다니 아깝기 짝이 없다. 넋 놓고 시서화 바라볼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집 앞에 서대문 자연사박물관도 있어 자연사박물관쯤이야 하고 코웃음 치느라 그걸 놓쳤네. 촐싹대다 망했는 줄 알았더니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 알았어도 볼 수는 없었다는.


아내 칠순이라서 여행하느라 한 이틀 못 나온다고 하니 부서 직원들이 어디 외국이라도 다녀오려느냐고 물었다. 가려고 마음먹으면 이틀 동안 일본이라도 다녀오겠지만, 목포에서도 그 못지않게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국내에 가보지 못한 도시가 하나둘이 아니다. 워낙 사방팔방 출장 다니는 직업이어서 안 가본 곳이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호남지방은 여수, 순천, 영광이 전부였다. 충청지방에는 대전 말고 출장 간 기억이 없고. 그만큼 이곳엔 기간산업이 없다는 말이다. 출장 간 것이 모두 기간산업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출장 기간 자체는 긴 편이 아니라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봐야 몇 달이었다. 그때마다 아내가 다녀갔고, 나중에 차를 가지고 출장 다닐 땐 아내가 함께 간 일도 많다. 어차피 혼자 타는 차에 혼자 자는 방이니, 낮에는 동네 구경하다 경치 좋은 카페에서 책이나 읽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런 아내도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단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지를 안동으로 정했다.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도 그렇고, 예전에 설계에 참여했던 임하댐도 한번 둘러보고. 영남 지역의 음식이란 게 그저 그런 정도인데, 그래도 하회마을인가에서 먹은 헛제삿밥은 나름 담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택에서 하룻밤 묶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모두 온돌방이어서 사양하기로 했다. 나이 들면 방바닥에 누웠다 일어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말이다.


혹시 추천할 만한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라. 추천하는 이유와 함께. 혹시 아는가, 후히 사례라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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