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조롱해 마지않는 ‘2찍’이지요.
여러분께 여쭤보겠습니다. ‘2찍’이 그렇게 조롱받아 마땅한 사람이겠습니까? 지난 선거에서 무려 1,600만 명이 ‘2찍’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각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생각 없이 선택하고 세상 이치를 몰라서 선택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 아닌가요?
지난 연말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제 선택의 결과가 그렇게 결말지어져서 매우 가슴 아픕니다.
직선제 이후 지금까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가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표하면서 언제쯤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정치 구도 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리고 제가 뽑고 싶은 사람을 뽑았습니다.
얼마 전에 후보 한 분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00일 넘게 고공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를 찾은 영상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 그들을 찾은 모습을 보면서 잠시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고 스스로를 질타했던 이미 고인이 된 어떤 분을 떠올렸습니다.
그때쯤 노동과 인권,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운 그 후보의 선거운동 영상도 보게 되었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후보를 왜 내었냐는 질문에 그보다 명쾌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놓아서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비록 당선과 무관하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을 득표해서 후보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노동과 인권,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관한 의제를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언젠가 심상정 의원이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당선자 선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알아는 듣겠는데 ‘그 이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습니다만,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겠습니다.
이번 투표로 노회찬 의원에게 가졌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았습니다. 모쪼록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그 후보자와 정당이 “우리는 혁신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그 정당과 후보의 공약 중 원전 정책에는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관한 생각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큰 틀에서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기후 위기가 왜 맥락 없이 원전 폐쇄로 이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로서 필요한 소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공약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찬성하거나, 찬성하거나, 적어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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