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안산자락길을 세 번 다녀왔습니다. 봄꽃은 이미 지났지만 녹음이 시작되기 직전의 연두색이 정말 좋더군요. 뭐든 새끼가 가장 예쁘다지 않습니까. 나뭇잎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오늘은 이미 녹음이 짙어졌습니다. 지난번에는 통 냄새를 못 맡았는데 오늘은 숲에 들어서니 나무며 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땀도 식힐 겸 간식도 먹을 겸 숲속 공연장에 자리를 잡았는데, 군데군데 둘러앉아 음식 나누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았습니다.
문득 안산자락길 자랑을 한 번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랑으로 그칠 게 아니라 이참에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서를 하나 쓰는 건 어떨까 싶기도 했습니다. 한번 정리해볼까요?
무엇보다 안산자락길은 시내에 있어서 굳이 큰맘 먹지 않고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무악재 서쪽에 있는 안산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여서 교통도 매우 편리하고 아무 곳에서나 안산자락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안산자락길은 전체 7킬로미터에 이르는 무장애길이지요. 휠체어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 놔서 안전할 뿐 아니라 걸을 때 전해오는 촉감도 좋습니다. 오늘도 전동휠체어로 오른 분을 만났고, 한곳에 전동휠체어 충전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순환도로 형태이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올라와서 아무 곳으로나 내려가도 됩니다.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 5번 출구, 한성과학고등학교, 서대문도서관, 홍제폭포, 서대문구청,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봉원사에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각 위치에 대중교통 노선이 여럿 있으니 모바일 앱을 이용하시면 교통편을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도심지 한복판에 순환도로 형태로 만들어 놓은 나무 데크 길이라니까 뭐 볼 게 있겠나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간의 절반 정도는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깊은 계곡에 들어온 느낌마저 듭니다. 그중 압권은 메타세쿼이아 길입니다. 십 층도 넘는 높이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아주 장관입니다.
코스도 아주 다양합니다. 걷기 힘든 분은 목적지를 ‘안산도시자연공원 입구’로 해서 택시를 부르시면 됩니다. 저희 내외는 산길 오르는 게 이미 녹록지 않은 나이라 택시를 이용하는데, 요금이 6천 원이 채 안 나옵니다. 지하철 홍제역에서 택시 타셔도 그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곳에서 안산자락길의 명물인 황톳길이 시작됩니다. 길 끝나면 발 씻는 곳이 있으니 마음 놓고 걸으세요. 저도 오늘 처음 걸어봤는데 한참 걷고 시원한 물에 씻고 나니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안산자락길에 오르는 코스도 이처럼 차가 닿는 데가 있는가 하면, 지하철 독립문역에서 올라오는 길은 가파르기도 하고 꽤 멀어서 어지간한 등산 느낌도 납니다. 안산자락길 중심에 솟아 있는 안산 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중간에 설치해놓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파릅니다. 물론 완만하게 오르는 길도 있지요. 자락길 곳곳에서 봉수대로 올라갈 수 있고, 그 길도 경사며 모습이 아주 다양합니다. 너와집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코스가 수십 가지는 될 겁니다. 나무 데크 길 사이사이에 예전 숲길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꽤 많습니다.
독립문을 지나 무악재를 오르다 보면 길 위로 육교가 가로지르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안산자락길에서 인왕산 자락길로 이어지는 육교입니다. 지하철 독립문역에는 서대문 형무소를 그대로 보존해놓은 서대문 독립공원이 있습니다. 독립문 앞에 있는 영천 시장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꽈배기집이 있고, 시장 안에 맛집도 꽤 여럿 있습니다. 꽈배기집을 가시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날 분량을 다 팔면 문을 닫거든요. 사직터널 쪽으로 길을 건너면 도가니탕으로 유명한 대성집이 있습니다.
서대문구청 앞에 이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홍제폭포가 있습니다. 워낙 내부순환도로 밑이라 비도 피하고 햇빛도 피할 수 있는 데다가 의자나 테이블도 많이 갖다 놓고 구청에서 청년 일자리로 카페도 운영하고 있어서 편하게 쉬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홍제폭포에서도 안산자락길로 오를 수 있는데, 그 일대가 모두 벚꽃 숲입니다. 봄이 되면 기가 막힙니다. 폭포에서 물레방아 옆으로 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사철 계절 꽃이 만발한 연희 숲속 쉼터가 있습니다. 주말에는 공연도 합니다. 언젠가 내려오다가 재즈 공연을 본 일도 있습니다.
서대문구청 정거장 다음이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정거장입니다. 정거장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가면 왼쪽으로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이 있습니다. 2003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 공립 자연사박물관인데요, 초대 관장이 제 지질학과 동기였습니다. 볼만한 게 아주 많습니다. 어른 7천 원, 어린이 3천 원입니다. 서대문 구민은 입장료가 절반이고, 저희 같은 노인은 물론 안 냅니다. 월요일은 휴관이고, 평일은 오후 6시, 주말에는 7시까지 운영합니다. 거기서 2백 미터만 가면 안산자락길입니다. 반대쪽으로 버스 두 정거장만 걸으시면 연희동 맛집들이 나옵니다.
이대 후문 쪽 금화터널로 가면 봉원사가 있습니다. 889년에 세워진 천년 고찰이지요. 안산자락길까지 2백 미터쯤 올라가셔야 합니다. 길도 널찍하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잠깐이면 갑니다. 이대 후문 쪽에는 숨은 맛집이나 잘 꾸며놓은 카페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안산자락길이 무장애길인 건 모두도 아실 것이고, 길 곳곳에 정자며 쉼터가 있습니다. 테이블이며 의자를 갖춘 곳도 많고, 책장을 둔 곳도 서너 곳이 넘습니다. 화장실은 세 곳이 있습니다. 그중 압권은 널찍하게 만들어 놓은 쉼터 두 곳입니다. 하나는 서대문구청 쪽에서 시작해 3백 미터 정도 가면 나오는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은 메타세쿼이아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은 무악재 쪽에 있는데, 한쪽을 관객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놨습니다. 아직 그곳에서 공연이 열렸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고, 공연이 있다고 해도 꼼짝없이 안산자락길을 꽤 많이 걸어 올라야 하니 관객이 제대로 모일까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쉼터로도 기가 막힙니다. 참, 약수터도 있습니다.
화장실 한 곳 앞에는 전동휠체어 충전기가 있고, 그곳에 압축공기로 먼지를 털어내는 기계도 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는 기계는 서대문도서관에서 올라오는 길가에 있습니다.
제가 안산자락길을 다니면서 놀란 게 하나 있습니다. 어디에도 휴지 하나 떨어져 있는 곳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뒷자리는 언제나 깨끗하게 치워져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앉았던 곳 앞에 제 또래 남자 열 명 정도가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식사하던데, 한 분은 큰 쓰레기봉투를 들고 뒤처리하기 여념이 없었습니다. 휴지 떨어진 거 못 봤다는 걸 깨닫고 유심히 살펴봅니다만, 정말로 안산자락길 전체가 아주 깨끗합니다. 떨어져 있는 건 나뭇잎뿐.
대개 음식이며 커피를 싸 오지만 쉼터 옆에 커피 차가 두세 곳 자리 잡고 있어 그곳을 이용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곳 역시 커피 파는 분이 치우지 않아도 다들 뒷정리 깨끗하게 하고 갑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거 치우는 것도 큰일이었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 공중도덕 공중질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지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지요. 안산자락길은 폭이 그리 넓지 않아서 어떤 곳은 두 사람이 겨우 비켜 갈 정도입니다. 그런 곳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도 불편하고, 뒤에서 앞질러 갈 사람도 불편하고. 물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은 건 누구나 매한가지이지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남에게 불편을 끼쳐서야 되겠습니까. 굳이 하지 말라고 써놨는데 등산용 스틱을 사용하는 분도 있습니다. 찍을 때마다 데크에 자국이 남는데 말이지요. 그런 사람들 만나면 저는 마구 욕을 합니다. 물론 소리 내서 욕하는 건 아니고, 마음속으로 그리고 눈으로 마구마구 욕합니다.
저녁 먹고 잠깐 쉬는 김에, 그 길 만들고 관리하는 분들 노고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