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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크룸로프 여행기

by 박인식

한 주 출장 계획이었는데 항공편이 일주일에 세 편뿐이니 같은 요일에 와서 같은 요일에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덕분에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는 덤을 얻었다. 일은 일이고 남는 주말은 주말대로 누리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손녀들 앞세우고 체스키크룸로프를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미리 한번 가볼까 싶기도 하고 체코에 처음 와보는 출장팀 막내에게도 선물이 될까 해서 일요일 일정을 그리로 잡았다.


173킬로미터. 일행 4명을 고려해 렌터카로 가기로 하고 프라하 중앙역 Budget에서 빌려 떠난 게 10시. 나름 서두른 게 그 모양이었다. 호텔에서 식사 마친 게 8시. 10분이면 갈 거리를 우버 기다리느라 중앙역에 도착한 게 9시. 담당자가 차 내어주러 간 거 기다리고, 돌아와 서류 만들고, 요금 결제하고, 차 키 받아 주차장 가기까지 또 한 시간. 한 시간 이상을 생각지도 않게 날렸다. 억울하다는 건 아니고, 렌터카 쓰실 분 고려하시라고.


렌터카 아침 9시에서 저녁 7시까지 70유로, 보험 full-package 15유로 (망설이지 말고 들어야 한다) 운전자 1인 추가 35유로, 부가세 21% 총계 145유로. 여기에 보증금 800유로 (카드 내역에 Deposit으로 표시되나 결제하는 건 아니고 차량 정상 반납하면 없어진다. 120만 원이 훌쩍 넘어 뭔가 싶겠지만, Budget 렌터카에선 이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 같은 회사 한국 지사에서도 그렇다고 하고 실제로 사용한 경험도 그렇다)


탄탄대로로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마을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주차장이 있는데, 일행이 있으면 위 주차장에서 내려 언덕을 걸어 내려가며 구경하는 게 편하다. 나중에 차 가지러 위 주차장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한 사람만 고생하면 여럿이 편하다. 그게 가슴 아프면 함께 몰려다니시든가.


내려가다 오른쪽 숲 사이로 마을 풍경이 살짝 보이는데, 가슴 설레기로 치자면 그곳이 으뜸 포인트. 조금 더 내려가서 쪽문으로 나가면 눈앞에 마을이 쫘악 펼쳐진다. 두 번째 포인트. 조금 더 내려가 성으로 지나가는 다리 위도 포인트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그런 정도. 성으로 들어가 통로 벗어나기 조금 전 쪽문으로 나가면 세 번째 포인트. 두 번째 세 번째 포인트는 안 가르쳐줘도 알만하다. 모두 줄 서서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으뜸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려면 조금 긴장해야 한다. 숲사이로 살짝 비쳐서 한눈팔면 그냥 지나가기 때문이다.


성문을 벗어나 동네로 들어가자면 딱히 새로울 게 없는 골목이 이어진다. 곧이어 이발사의 다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개울 흐르는 거 구경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면 끝. 개울 물살이 생각보다 세다. 개울가에서 성 올려다보며 식사하는 게 마지막 포인트쯤 된다. 음식값은 포인트 값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 정도이다. 맛은 밥 값할 정도거나 조금 못 미치거나. 벚꽃놀이 가서 바가지 쓰는 것보다는 싸다. 그래도 인당 20유로는 생각해야 한다.


돌아 나오는데 손녀들 데리고 프라하에서 두 시간이나 내려오는 게 맞나 싶은 회의가 잠깐 든다.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다. 독일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 눈에 별로 새로울 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홍대입구가 훨씬 낫겠다.


프라하로 돌아가는 길은 주말 저녁 서울 가는 고속도로 막히듯 막힌다. 내려갈 때보다 한 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렌터카 반납은 저녁 8시이고, 그때 반납하지 못하면 다음 날 아침 일찍 반납하면 되지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겨우 주차장을 찾아도 프라하 안에서는 하룻밤 주차비로 최소한 40-50유로를 내야 한다. 그러니 주말에 프라하로 돌아가야 한다면 한 시간은 일찍 떠나야 한다.


유류대 40유로를 합하면 185유로. 혼자서 운전하면 35유로가 빠지니 150유로, 24만 원. 대중교통보다 편하고 시간을 아껴 쓴다는 점에서는, 더구나 일행이 여럿이면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관문은 반납. 차 반납할 때 이렇게 세밀하게 확인하는 경우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Deposit 걸어놓은 게 800유로나 되니 아차 하면 엄청난 돈을 날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긴장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 다행히 이미 차를 몇 번 빌렸던 사람들이어서 빌릴 때 꼼꼼하게 챙겨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정도로 확인한다면 자칫 돌멩이 하나만 튀어들어도 큰돈을 물어야 할 일이니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빌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더라.


이십 년쯤 전에 베를린에서 기차로 프라하를 다녀갔다. 분명히 기차 타고 다녀갔는데 프라하 중앙역 역사가 영 낯설었다. 오늘 차 빌리러 가다 보니 프라하 중앙역은 길 건너편에 있는 지하 1층 입구를 통해 출입하는 게 아닌가. 그리로 들락거렸으니 지상에서나 보이는 중앙역 역사를 못 보았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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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크롬로프 50.jpg 찬조출연한 출장팀 막내 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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