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체스키크룸로프를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데 호텔 로비에 세워놓은 관광안내서 사이로 연주회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쯤 연주회를 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참이었는데. 지난번 출장땐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연주회를 며칠 차이로 놓쳐 몹시 아쉬워했던 터라 얼른 어떤 프로그램인지 살펴봤다.
사실 프라하에는 거의 매일 곳곳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국립 오페라극장이나 전문 연주장뿐 아니라 곳곳에 있는 교회에서도 열린다. 하루에도 여러 곳에서 열리고, 심지어 한 연주장 안에서도 연주 홀마다 각각의 연주회가 열린다. 국립극장, 국립오페라극장 모두 오페라를 비롯한 연주회가 열리고 전문 연주장인 스메타나홀이나 루돌피넘 말고도 연주회가 열리는 교회 숫자는 세다 그만둘 정도였다.
그렇기는 해도 일행이 있는데 혼자 가기도 뭐하고, 같이 가자면 싫다고도 못하고 따라나설 텐데 그건 또 못 보겠고. 막내 과장은 이제 서른을 넘은 아직은 감성이 풍부한 아가씨인지라 가자고 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니 다른 일행이 가지 않으면 둘이라도 가볼 생각을 하고 프로그램을 살펴보는데 슬며시 욕심이 났다. 하나같이 잘 알려진 곡만 모아놨기 때문이다. 어떤 곡인지 구분은 못해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쉽게 흥얼거리며 따라부를 그런 곡들이었다. 비발디 4계, 비제 카르멘 모음곡, 차이콥스키 꽃의 왈츠, 드보르작 슬라브 무곡 같은.
체스키크룸로프를 향하는 차 안에서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잘 알만한 곡으로만 구성한 연주회인데 한 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설명하는 것보다 들려주는 게 빠를 것 같아 유튜브에서 하나씩 들려주어 결국 모두에게 동의를 얻었다.
첫날 업무는 기대한 것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해 일과 마칠 때쯤 계획한 분량 가깝게 소화해냈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연주장인 루돌피넘으로 향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이름을 딴 루돌피넘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로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연주장 옆을 흐르는 블타바 강과도 썩 잘 어울린다. 1895년 결성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단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는데, 드보르작이 자신이 작곡한 신세계 교향곡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루돌피넘 앞뜰에 드보르작의 동상이 서 있다.
한 시간 남짓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기대했던 대로 모두가 연주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흐뭇했다. 어제 차 안에서 유트브 영상을 틀어가면서 예습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귀에 익은 곡이 더욱 친근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연주회가 열린 루돌피넘의 수크홀은 백이삼십 규모의 아담한 소극장으로, 대극장인 드보르작 홀과 함께 일년내내 많은 연주회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도 양쪽 극장에서 같은 시간에 각각 연주회가 열렸다. 수크 홀은 워낙 분장실이었던 공간을 수리해 체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수크의 이름을 붙였고. 워낙 연주장으로 지어진 게 아니어서 음향이 어떨까 싶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울림도 좋고 우리가 앉은 객석 구석까지도 소리가 잘 전달되었다. 일행 중 한 친구가 첫 음을 듣더니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을 정도였다.
거기에 비해 연주 자체는 너무 기성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예술성을 기대하며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웠다. 하긴 삼십 유로에 그 정도면 준수한 편이지. 뭘 더 바라겠나.
연주장이 격식을 차리지 않은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였고, 자리가 뒤쪽이어서 눈치 보지 않고 영상도 찍을 수 있었다. 곡이 시작될 때마다 프로그램에 적힌 곡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기도 하고, 구글을 이용해 곡목 검색하는 것도 알려줬다. 구글 검색으로 직접 노래 제목을 확인하면서 즐기는 사이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지루해하기는커녕 이구동성으로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단다. 출장 업무 첫날 저녁치고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이 시작되면 체코 두 번째 도시인 브루노에 숙소를 둘 것 같은데,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거기도 어지간한 연주는 열리지 않을까 싶다. 수준 높은 연주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연주회 마치고 근처의 블타바 강변 레스토랑에서 한동안 여운을 즐기느라 수다스러웠다.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고, 브루노에서 지내면서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자는 내 제안에 모두 흔쾌하게 동의했다. 그러는 사이에 강 건너로 보이는 프라하 대성당이 아름답게 변해갔다. 첫 유럽 출장에 조금은 들떠있는 막내 과장을 세워놓고 이리저리 재어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을 받아들고 당장 프로필 사진을 바꾸겠다고 할 만큼 흡족해했다. 이 기운이 그대로 이어져서 주말에 좋은 결과를 얻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