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출장 때 스메타나홀에서 열린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공연을 며칠 차이로 놓쳐서 몹시 아까웠다. 이번엔 오자마자 프라하에서 열리는 공연을 검색해 후배들과 함께 루돌피넘에서 열린 실내악 연주를 다녀왔다. 프라하 오페라야 워낙 정평이 났지만 이번 주 공연 목록에서 보이질 않아 이미 시즌 아웃 되었으려니 생각했다.
프라하에 출장 왔다는 글을 읽으신 페친 이희정 선생께서 손수 검색해 오페라 공연 목록을 올려놓으셨다. 화들짝 놀라 다음날 열리는 오페라 자리 하나를 구했다. 마침 프라하 스테이트 오페라에서(Prague State Opera)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공연이 잡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작품이어서인지 자리가 몇 곳 남지 않았다.
<라트라비아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따라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자리가 넉넉히 남았으면 후배들에게 한 번 더 권했을 것이다. 줄거리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고, 그래서 내용 전개가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리아가 워낙 유명하기도 해서 말이다.
티켓을 보니 예의를 갖춘 복장으로 오라고 되어 있는데, 너무 흉하지 않을 정도면 되지 싶다가도 혹시 망신이나 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편한 데 맛이 들리다 보니 구두를 신어본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이고, 이번 출장에도 구두를 안 가져왔는데. 후줄근한 바지에 반팔 티셔츠뿐이라서 그중 짙은 색으로 골라 입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되어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데, 그동안 프라하에서 봤던 이들과는 영 다른 차림이었다. 여성들은 하늘거리거나 반짝이거나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남성들은 하나같이 타이를 맸다. 별일 없이 입장하기는 했어도 예절을 모르는 동양인이라고 흉보지 않았을까.
혜인 아범이 오랫동안 몸담은 독일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은 대극장과 포이어홀이 무척 아름다운데, 이곳 대극장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객석은 천여 석 정도로 비스바덴 극장과 비슷한데 훨씬 커 보였다. 객석이 대부분 1층에 있는 비스바덴 극장과 달리 이 극장은 2층 박스석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포이어홀은 비스바덴 극장만은 못하고.
왜 이렇게 복장 이야기며 극장이 예쁘니 아니니 하는 이야기만 하느냐.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도 빈약했고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모두 아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합창은 조금 들을 만했다. 2부 후반부터 나아졌지만 그게 나아진 건지 내가 기대를 접어서 낫게 들린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1888년에 개관해 운영하다가 3년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2020년 재개관했다는 극장을 본 것만으로도 티켓값은 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프라하 국립 오페라극장이라고 쓰기는 했는데, 프라하에 국립극장이 하나 더 있다. 어제 간 곳은 프라하 중앙역 근처에 있는 Prague State Opera이고 이곳 말고 불타바 강변에 National Theater가 하나 더 있다. 로비에 놓인 6월 연주회 목록을 보니 The Estate Theater, The New Stage 이렇게 모두 네 곳에서 오페라가 열린다. 오페라의 본고장이라고는 하지만 일 년에 오페라 몇 편 올리기 바쁜 서울의 무대와 너무 차이가 난다. 그나저나 어떨 때 State가 붙고 어떨 때 National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 독일엔 오페라극장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Staatsoper, Städtische Oper, Deutsche Oper 이렇게 세 종류나 있으니. 변변한 오페라극장이라고 해 봐야 ‘예술의 전당’ 정도인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 더구나 오페라 가수가 직업인 자식을 둔 사람으로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박스석이 좋기는 하다. 아무 눈치 안 보고 편한 자세로, 가끔 사진도 찍고. 예전에 비스바덴 극장장의 배려로 귀빈석 박스에서 본 일이 있기는 한데, 그때는 돈을 내지 않아 그 자리가 엄청 비싼 줄 알았다. 오늘 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