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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6.03 (화)

by 박인식

투표소를 홍은중학교 본관에서 체육관으로 옮겼다. 투표하러 가도 운동장까지 돌아볼 일은 없었는데, 혜인 아범 졸업식 이후 거의 삼십 년 만에 본 교사며 운동장이 어찌나 깔끔하게 잘 정비되었는지 보는 내내 반가웠다.


옮긴 투표소는 교문에서 꽤 들어가는 곳이었다. 깔끔해진 교사며 운동장을 돌아보는 것도 잠시, 어머니께서 걷기 힘들어 쩔쩔매시는 걸 보면서 울화가 치밀었다. 투표소를 늘린 건 유권자들이 좀 더 빠르게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차가 닿을 수 없는 곳이었으면 걷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 휠체어라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교문에서 유권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많은 분이 수고하고 있었다. 혹시 휠체어가 마련되어 있느냐고 물으니 모두 모르겠다고 한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투표장을 옮겼으면 걷기 힘든 분들을 위해 휠체어를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니 자기는 안내만 맡았을 뿐, 안쪽에 들어가서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말하란다.


내 말투가 곱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격이 작지 않은 사람이 큰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으니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 자기는 동네 통장으로, 투표 안내를 위해 나와 있다는 항변도 충분한 이유가 될 만하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자가 아니라고 해도 투표장이 멀어졌다면 그 정도 관심을 두고 챙겨볼 수는 없었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더라도 그런 요청을 받고 얼른 뛰어가 알릴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일까?


안내하느라 수고한 분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분에게 불만을 표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를 향한 불만인지도 모른다. 잠시 후 나타난 선관위 관계자에게 조치를 요청했다. 미안하다고, 조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안해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차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선택하는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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