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6.11 (수)

by 박인식


오늘이 화요일인 줄 알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이튿날 오후까지 내내 깨어있었기 때문이다. 출장 갈 날은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어지간히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성과물들이 확인할 때마다 오류가 눈에 들어왔다. 이러다가 가기 전날까지 허덕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차라리 한번 끊어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지간히 마무리 짓고 집에 돌아가 기절하듯 잤다.


서른 시간을 내쳐 일했다. 잠깐 눈이라도 붙일 생각이었으나 그것도 잊었다. 중간에 뭔가 뒤엉켜 두어 시간을 그에 매달리다 보니 창밖이 훤히 밝아왔다. 현지법인에서 일할 때도 간혹 밤샌 일이 있지만, 그것도 이미 아득한 옛말이 되었다. 이런 일이 다시 있을 줄 몰랐는데.


함께 일하는 후배와 식사하는데, 나와 다시 일하게 되었다니까 누군가 힘들겠다고 걱정하더란다. 다른 사람이 그러더라고는 하지만 아마 그게 그 친구의 속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지법인으로 떠나기 전에 내 손으로 뽑은 직원이었는데, 만만치 않은 내 성격을 이미 겪어봤으니 나와 다시 일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딱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 말했다는 걸 보니 내가 좀 달라지기는 한 모양이다. 여전하다고 대답했다면 그 말을 내게 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긴 업계에 악명이 자자하기는 했지. 아들과 동갑인 그 친구를 뽑으면서 자식 나이의 후배를 받는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미 중견으로 부서를 떠받치고 있다.


그 친구에게 이제야 내가 내 자리를 찾은 거 같다고 했다. 일만 하면 되는 자리. 지금까지 살면서 일이 무서웠던 적은 없다.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일 많은 걸 오히려 즐겼다. 문제는 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생겼다. 그 역할은 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가져오는 게 중요했는데, 그러기 위해 우리 능력을 드러내다 못해 과장하고 때로는 허풍을 떨어야 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 일이었다. 열심히 하는 걸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는 말이다.


사우디에서 주로 하는 일이 그거였는데,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한 것에 비해 성과는 늘 보잘것없었다. 그래도 세계에 처음 시도되는 해안오염복원사업을 갖은 난관 끝에 사업관리단의 칭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큰 보람을 느끼기는 했다. 문제는 이후에 그런 기회가 다시 없었다는 것이지만.


아, 내가 지금 한가하게 이런 글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얼른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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