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가서 첫날 합동회의 때 설명할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지금껏 발표 자료는 늘 스스로 만들었는데, 성격이 별나서도 아니고 딱히 다른 이보다 잘 만들어서도 아니다. 내가 내 논리대로 만들어야 설명이 자연스럽고 꼬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자료를 만들어줘도 내 입에 붙지 않으면 버벅거리게 마련이다. 이번에는 준비하는 게 너무 많아서 설명 자료까지 만들려니 꾀가 났다. 문득 인공지능에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출장 준비하는 동안 인공지능 덕을 엄청나게 봤다. 준비라고 해봐야 늘 하던 일이니 딱히 어려운 건 없지만 워낙 분량이 많아 도저히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함께 준비하는 후배들은 경험마저 없어 처음 시작할 땐 막막하기까지 했다. 일이라는 게 시간 지나면 어차피 끝나게 되어 있으니 큰 걱정을 한 건 아니지만, 한동안 고달플 걸 각오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덕분에 작업 시간을 몇 분의 일로 줄이고, 그렇게 아낀 시간에 내용을 더 다듬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같은 작업을 하는 데 후배들보다 성과가 나아 보여서 살펴보니 결국 성과의 차이라는 게 질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차이는 축적된 경험의 차이였고.
문득 작년 초에 사우디 관련해서 가졌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책 팔리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출간하고 한동안 출판사 통해 요청하는 인터뷰를 마다치 않고 쫓아다녔다. 어떤 데서는 질문지를 제대로 보냈지만, 내가 질문지를 고쳐줘야 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해야 해서 살살 짜증이 날 때쯤이었는데, KBS 시사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가 운영하는 개인 채널에서 인터뷰하자는 요청이 왔다. 명성만으로도 호기심이 일기는 했지만, 보내온 질문이 너무 많았다. 줄잡아 사십여 문항은 되었던 것 같다. 웃음이 나왔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라면서 두 시간에 이걸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싶어서였다.
딱 두 시간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그 질문을 다 소화했고, 거기에 몇 가지 추가하기까지 했다. 내가 뭔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정작 중요한 건 건너뛰고 지엽적인 것만 물어 오히려 내가 이야기를 끌어가야 했던 일도 있었는데. 두 시간 인터뷰해 편집한 결과가 1시간 24분. 잡음 빼고는 다 살렸다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인터뷰는 절반 건지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껏 그때처럼 질문의 힘을 실감했던 일이 없다.
지금도 가끔 그 인터뷰를 본다. 내가 사우디에서 13년 경험한 거의 모든 게 그 인터뷰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때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예측한 사우디 시장 전망과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난 지금 실제 시장 상황을 비교해 보면서 내가 뭘 제대로 봤고 뭘 잘못 봤는지 복기하는 게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때로는 유익하기도 하다.
그 ‘질문 선수’가 KBS 라디오 ‘성공예감’을 진행하는 이대호 기자이다.
어쩌다 출장 준비하던 이야기에서 인터뷰로 이야기가 튀었나 하시겠지만, 아니다. 인터뷰 이야기 하자고 굳이 출장 이야기에서부터 질질 끌고 온 것이다. 요즘 내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분이 한 분 생겨서 그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이니, 그게 자기 이야기인가 보다 하는 분은 고맙게 여기시라. 링크는 아래에!
덤) 인공지능 덕분에 설명 자료를 삼십 분 만에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에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p8BQcc91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