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법인으로 떠난 게 2009년 2월이었으니 본사에서 근무한 것이 벌써 16년 전 일이 되었다. 그사이 많은 게 변했다. 그렇기는 해도 새로 만난 후배들과 일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굳이 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고, 후배들이 기대 이상으로 자기 일을 잘 감당해서 계획보다 훨씬 늘어난 업무를 원만하게 잘 마무리 지었다. 이번 일로 새로운 상품을 하나 마련한 셈이 되어 부서의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오래전 사업 영역을 확장해 보겠다는 의욕으로 본사를 떠났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아쉬움과 회한을 이번 일로 조금은 만회한 것 같아 흐뭇하다.
어느 사업이건 고비 없이 넘어간 적은 없었다. 늘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터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매번 허덕여야 했다. 지난 시간 생각하니 그렇게 허덕인 기억밖에 없다. 늘 문제가 생겼지만,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매번 허덕여야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엎어 먹은 일은 없었다. 그랬는데도 문제가 생기면 결국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덕였던 시간만 기억하고 나 자신을 들볶으며 살았다.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는 걸로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늘 해결되기 마련이었는데 전에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나이 덕분이기도 할 것이고, 사우디에서 마지막 몇 년 원 없이 갈리고 닦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생각도 하기 싫은 그 시간이 입에 쓴 약이었다는 말이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지금껏 넘어온 언덕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 언덕 하나 잘 넘어온 오늘도 후배들이 이런저런 걱정을 한다. 겪어봤으니 예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고, 더구나 상황이며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른 곳에서 일해야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매우 소심하다. 겁도 많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걱정을 사서 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내가 걱정하지 않은 일은 안 일어난다고 장담할 정도일까. 그런데 이번 일을 하면서 그런 걱정이 대부분 사라진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놀랄만한 변화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내가 좋다.
현장으로 떠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미뤄질 것 같다. 워낙 감당하기 어려운 일정이어서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엄청난 사업의 계약조건을 이 짧은 시간에 확정 짓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큰 틀에서 합의했다 하더라도 어느 쪽이든 실무자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읽는 이들이 섣불리 이번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샅바 싸움이 치열하다고 해서 씨름판이 엎어지는 게 아니듯 여겨주시라.
주말엔 아이들이 온다.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면 아이들 오기 전에 떠나야 했는데. 이래저래 다행하고 감사한 것뿐이다. 며칠 휴가를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