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7.12 (토)

by 박인식

느지막이 일어나서 습관처럼 페북부터 열었다. 임윤찬이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꽂혀서 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보인다. 그저 들을 줄만 아는 나로서는 임윤찬 연주에 대한 많은 이들의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를 매번 신기한 눈으로 읽는다. 익숙한 곡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몰입해 감상할 정도는 아니고, 한쪽 모니터에 열어놓고 여느 때처럼 성경 쓰기를 시작했다.


오늘치 쓰고 생각하니 내일은 아이들이 와서 쓸 시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 것까지 썼다. 생각할수록 병이지 싶다. 그냥 하루 안 쓰고 미룬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거도 아닌데. 며칠 전에 <80세의 벽>을 읽으면서 나이 들면 굳이 싫은 걸 하면서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으면서 말이다. 왜 스스로 이런 의무를 만들어 놓고 거기 매어 사는 걸까. 물론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뭐가 스스로를 그렇게 매게 만드는 걸까.


연주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이 보이지 않느니, 어떻게 그렇게 한 음도 놓치지 않고 연주하느니 하는 말이 큰 실례라고는 하더라만, 나는 한 시간이나 넘는 저 긴 곡을 어떻게 틀리지 않고 거기에 감정까지 실어서 연주할 수 있는지 늘 의아하다.


긴 걸로 치자면 바그너 오페라가 빠지지 않는다.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네 시간이 넘는다. 익숙하지 않으니 찾아서 볼 일은 없고 혜인 아범이 출연한 작품을 본 게 전부이기는 하지만, 보면서도 좀처럼 친해지지는 않는다. 대표작 중 하나인 탄호이저도 네 시간이나 되고, 그중 대부분을 주인공 탄호이저를 맡은 테너가 이끌어간다. 고음을 연속해서 내면서 네 시간이나 부르려면 체력도 어지간한 정도로는 안 되어 보인다. 혜인 아범 말로는 그런 작품은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그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는단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그것보다도 그 긴 노래를 어떻게 다 외우는지가 더 궁금하다.


혜인 아범이 무대에 선 초기만 해도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아리아도 혹시 틀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물론 그건 자식이기 때문이었을 테지만.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보니 하는 일 없이 서너 시간을 훌쩍 흘려보냈다. 이렇게 이어지지도 않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해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닌데. 하지만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거도 아니고 그저 내가 정하고 내가 선택한 일인데. 언제쯤 이런 굴레를 걷어차 버리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살 수 있을까.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낮에 자고, 내키지 않는 사람과 굳이 잘 지내려 하지 않고, 마음이 바뀌어도 설명하려 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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