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7.07 (월)

by 박인식

모처럼 아버지 기일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일정이 미뤄진 김에 조금 더 미뤄져야 가능하겠지만. 혜인 아범이 이렇게 모두 다 있는 김에 제 삼촌들과 사촌까지 저녁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홍수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사방에 음식점이 널렸는데 정작 음식점을 예약하려니 모두 마땅치 않았다. 어딜 가나 보기는 화려한데 정작 젓가락 갈 만한 음식이 없고, 그저 달고 짜고 매운 맛뿐이어서 잔뜩 늘어놓은 음식 가운데 그저 서너 개에 손길이 갈까 말까 하곤 했다.


아내가 괜찮은 한정식집이 있다면서 굳이 한번 가보자고 했다. 말이 좋아 한정식이지 여염집 밥상만도 못한 곳이 수두룩한지라 별 기대 없이 갔다. 가짓수나 차림새나 다른 곳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남들은 보리굴비라면 사족을 못 쓰더라만 나는 도통 보리굴비 맛있는 줄 모르고 산다. 뻣뻣하고 짜기만 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 점 입에 넣으니 맛이 슴슴하니 괜찮더라. 떡갈비는 다른 곳보다 덜하기는 해도 단맛이 강한 건 여지 없었고. 나머지는 그냥 그냥.


맛있다고 할 맛은 아닌데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그저 편안하게 먹었다. 음식 정갈하고, 양도 적지 않았다. 젓가락이 닿지 않은 음식이 없었고, 끝내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전체적으로 맵지도, 짜지도, 달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요즘 사람들 입맛에 전혀 맞지 않는. 말하자면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데. 맛없는 맛, 슴슴한 맛, 어찌 보면 밍밍한 맛, no taste, ‘무미(無味)의 미(味)’라고나 할까. 물론 이는 맛없는(not tasty) 맛과는 다른.


요즘은 맛있는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고 감동적인 일도 없다. 모두 나이 탓이란다. 오래 산 덕에 많은 걸 겪었으니 어지간한 강도가 아니면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그 나이.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음식점을 나올 때 맛있었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다시 이 집을 오나 보라고 다짐하는 게 훨씬 많은 그 나이의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음식점이다. 장담하건대, 젊은이들은 가면 돈 아깝다 그러고 나올 집이다. 그러니 좋게 말할 때 가지 마라.


백반 한 상으로는 싸지 않은 가격이다. 그렇다고 엄두를 못 낼 정도는 또 아니다. 가격은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니 그저 음식점 이름 대는 것으로 퉁치자. 연희동 ‘수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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