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을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을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을이 늘 을이기만 할까? 마찬가지로 갑이 늘 갑이기만 한 것도 아니지 않을까? 당장 청문위원으로 청문 대상자를 쥐잡듯 잡도리했던 어떤 인사가 청문 대상자가 되어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서울로 돌아와 본사 복귀할 생각은 않고 은퇴자처럼 하루하루 소일하던 중에 부산 어느 아파트 옥상 방수공사 현장에 잡부로 일하게 되었다. 그 현장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사람은 건 공사 감독도 현장 소장도 아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우리가 아무리 쓸고 닦아도 성에 안 찼던 모양이었다.
청소는 잡부인 내 몫이라 그 화살이 모두 내게로 왔다. 공사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떨어질 수는 없는 일. 그래도 떨어지는 족족 따라다니며 쓸고 닦았는데도 아주머니들의 닦달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 현장 소장에게 돈을 좀 내놓으라고 하더란다. 그런 일이 있으면 늘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걸 모르고 그저 쓸고 닦기만 했으니 그들의 눈에 내가 얼마나 딱해 보였을까. 그걸 보면서 갑을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꿨다. 갑이 될 수 없어서 그렇지, 갑이 되면 모두 갑질을 하게 마련이라고.
준비하는 사업 착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협력해 왔던 발주처 담당자가 간밤에 우리 담당을 닦달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발주처와 회의가 있어 출장 내려가던 우리 담당이 아침 댓바람부터 씩씩거리며 전화를 해왔다. 그러고는 안 되면 확 뒤집어버려도 되냐고 묻는다. 수습하려면 애는 먹겠지만 상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문제가 됐던 부분을 같이 검토하고 전화 끝내기 전에 한 마디 건넸다. 그러지 말라고.
“다시 검토해 봐도 우리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그 친구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았겠냐. 이 일로 상관에게 깨졌거나, 다른 일로 깨진 걸 여기다가 엉뚱하게 화풀이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뭔가 억울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쪽에서 그 친구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지 않더냐. 그러니 ‘어제 지적하신 거 다시 찬찬히 검토했다. 지적한 내용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 있겠더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차근차근히 설명드리겠노라’ 하고 잘 마무리해라. 검토했더니 아무 문제 없더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그래봐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밖에 더 되겠냐.”
참, 성질 많이 죽었다. 그런데 발주처 담당도 우리에게나 갑이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별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