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7.18 (금)

by 박인식

점심은 늘 동료들과 지하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말이 구내식당이지 여기서 식사하는 데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천 명이 훌쩍 넘는 빌딩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해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뷔페식인 데다 값도 싸고 음식 하나하나가 다 먹을 만하다. 우선 내가 질색하는 짜고 맵고 단 음식이 별로 없다. 사실 점심 뭐 먹을지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부서 막내가 늘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어물어물하다가 점심 먹으러 가는 데 따라나서질 못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나는 순댓국을 좋아하는 음식 중 으뜸으로 친다. 돼지고기가 금기인 곳에서 십수 년 살면서 서울 다녀갈 때마다 의례 치르듯 먹은 음식이어서 더욱 그렇다.


지난주엔가 밤샘 근무하면서 순댓국을 먹었는데 설설 끓여 나오는 통에 마지막 숟갈 뜰 때까지 맛도 모르고 먹었다만, 오늘도 여지없이 뚝배기 채 설설 끓는다. 왜 도대체 이렇게 끓는 채로 음식을 내는 것일까? 정말 손님 입맛을 생각해서일까? 예로부터 국밥은 뜨끈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는 했어도, 그게 이렇게 설설 끓는 건 아니지 않았을까?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 아래층에 정말 맛있는 순댓국집이 있었다. 요즘처럼 당면으로 채운 순대가 아니라 정통으로 직접 순대를 만들어 토렴해 내는 집이었다. 모르는 이들은 토렴을 불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만, 토렴이야말로 음식 먹기 딱 좋은 온도로 맛있게 말아내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토렴하는 과정에서 밥에 들어있는 녹말이 우러나와 국물이 더 맛있어진다던가 어쨌던가, 아무튼 그렇게 먹는 게 훨씬 맛있었다. 하긴 요즘 사람들이 토렴이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모두 짜고 맵고 달다고 투정했는데, 거기에 뜨거운 음식 하나 더 보태야겠다. 너무 뜨거워 먹기 어려운 건 고사하고 마지막 숟갈 놓을 때까지 무슨 맛인지조차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은 집 있으면 좀 알려주시라.


518277907_23989600667316089_3467136786572182497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07.15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