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7.24 (목)

by 박인식

떠날 날을 잡고 나니 마음이 몹시 바쁘다. 일 년이라고는 해도 몇 번은 다녀가야 할 것이니 길어야 서너 달이 되겠지만, 고작 그거 비우는데도 정리해 놔야 할 일이 곧 많다. 만나야 할 사람, 조치해야 할 일, 챙겨야 할 약, 지키지 못할 약속까지.


사실 아직 한 달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계약이 체결되고도 밟아야 할 절차가 하나둘이 아닌데 아직 계약조차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은 건 요식행위 뿐이기는 하다. 하지만 절차라는 게 워낙 그 요식행위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일이어서 다음 달이나 가겠거니 했거든.


엊그제부터 일이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초 계획대로 8월 1일 착수하라는 것이었다. 상대 회사 책임자는 휴가를 떠났고, 그래서 그를 대신할 인사를 찾아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고 하고, 그렇지 않아도 자리 얻기 어려운 휴가철에 항공편 확보하고, 현지 숙소와 차량이 제대로 준비됐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어제 퇴근 무렵 체코에서 워킹비자 없이는 현장에서 일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필요한 서류가 하나도 준비되지 않아 일단 무비자로 입국해 일하면서 워킹비자를 얻을 생각을 했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상대 회사 담당자가 애써서 그 어려운 주한 체코대사관 비자 인터뷰 시간을 잡아서 보냈다. 휴가철이라 사람도 없는데 그 복잡한 서류 다 만들어 보내고, 심지어 수백 킬로 떨어진 현장에 가서 직접 숙소까지 다 마련해놓았다. 괴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아침에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 몇 개 발급받고 나니 출발일과 비자 개시일이 달라 항공권을 바꾸느라 난리를 한 번 치렀다. 결국 항공권과 여행보험증권을 마련하지 못한 채 비자 인터뷰를 갔는데, 다행히 오늘 중으로만 제출하면 된다는 양해를 얻어 고비를 넘겼다.


오늘 비자 인터뷰는 잘 끝났고 내일 몇 사람이 더 남았는데, 서류를 온전히 갖추었으니 별일 없이 잘 마무리될 것이다. 월요일에 떠날 줄 알았는데 서류가 꼬이는 통에 금요일로 미뤄져 덕분에 아버님 기일을 지키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들 가족까지 와서 함께 기일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가 하필 기일 아침에 떠나야 해서 몹시 섭섭했는데.


인터뷰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 광화문까지 가서 ‘화목순대’를 건너뛸 수는 없는 일. 뙤약볕 아래 가깝지 않은 길을 걸어, 게다가 가게 앞에서 한참 기다려 섰다가 받은 순댓국은 여전히 설설 끓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화목순대’니까. 그런데 이름만 남고 맛은 어디로 도망가버렸다. 덕분에 입천장만 까졌다. 나오면서 다짐했다. “내가 다시 순댓국을 먹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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