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인플루엔셜
2015년 6월 15일
조훈현 명인의 자서전 10주년 개정판이 나왔다고 해서 망설이지 않고 책을 주문했다. 요즘 나보다 나이 든 이가 쓴 책을 찾기 어렵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하는 이는 더욱 찾기 어려운 때에 자타가 공인하는 절대 고수가 책을 냈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책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주옥같은 통찰이 마구 쏟아진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 대결에서 지고 난 뒤 저자는 인터뷰에서 이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인간은 기계를 이길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인간이 편해지자고 기계를 만들어 놓고 왜 기계를 이길 수 없다고 한탄하느냐고 묻는다. 바둑 또한 세상 사는 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기자는 바둑에 관해 물은 것이었으나 저자는 세상 사는 이치를 대답한 것이니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의미가 적지 않다.
그는 이른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불과 마흔셋에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뺏기고 무관으로 전락한다. 바닥까지 떨어졌다 다시 올라서고 또 떨어지고 올라서기를 반복하면서 이기고 지는 데에 이골이 날 만도 한데 좀처럼 패배의 아픔이 무뎌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 인생에서 승패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떠하든 최선을 다하면서 내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정녕 고수인 것은 나는 칠십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사실을 불과 사십 중반에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고, 그래서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시 돌아간다고 그때보다 더 잘할 자신도 없고, 그 치열했던 순간을 다시 겪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굳이 그래야 했을까 싶다. 인생에서 승패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말이다.
저자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다면서, 최상이 아니면 최선을,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하되 양보나 타협이나 포기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나 역시 젊었을 때는 늘 최고의 결과를 추구했다. 조금씩 경력이 쌓이면서는 매번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최선을 다한 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내 알 바 아니라는 자기변명으로 들려 나도 그런 말을 쓰지 않았고 다른 이들도 쓰지 못하게 했다. 양보나 타협이나 포기는 당하는 것일 뿐, 내 선택지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나이가 든 이제는 양보나 타협이 충분히 훌륭한 선택지라고 생각할 만큼 바뀌었다. 포기 또한 선택지이고.
저자는 자신이 키웠던 제자에게 마지막 남은 타이틀을 뺏기면서 무관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잃을 게 없다. 더 나빠질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대회에 참가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기고 지는 일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승패에 초연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게는 낯선 일인 패배를 되풀이하면서야 비로소 자신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여유가 찾아왔고, 자신의 실패를 두고 농담을 건네게 되었다.
저자가 1997년 동양증권배 고바야시 9단과 겨룬 결승 1국에서 앞선 상대를 물고 늘어져 승리를 거두자 많은 이들이 지독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에 대해 그는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문득 이 말을 어딘가에 인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에 읽은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기억하지 못했던 건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주제로 삼은 개정판 서문 때문이었다. 그 대국은 초판이 나오고 나서 열렸고, 그랬으니 달라진 서문을 읽으며 미처 읽은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읽은 걸 다시 되짚어보니 하나씩 기억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역시 복기에 관한 것이었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 한다.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기를 잘해두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좋은 수를 더 깊이 연구하며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길 준비를 하게 해준다. ... 자신이 실수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바라보는 건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승부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승리는 오직 실수를 인식하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이때 중요한 건 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창피한 일, 너무 후회되는 일은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를 빨리 극복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아예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극복하되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진단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 있는 아들을 고등학교 3년 내내 퇴근하고 내가 가르쳤다. 빠듯한 월급으로 성악 레슨과 과외를 같이 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졸업할 무렵에는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갈라졌다. 자식이 되다 보니 포기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알아듣게 가르쳤는데 시험에 틀려오는 걸 보고 소리를 높이지 않는 아비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복기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시험 끝나면 반드시 시험문제지를 다시 풀게 했다. 그래서 정답을 모두 맞힐 때까지 그 일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시험 틀린 건 야단치지 않았지만, 문제지를 챙겨오지 않았을 때는 크게 나무랐다. 문제지 챙기는 건 자세만 되어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아들에게 요구한 건 단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그걸 통해서 인생을 배울 수 있었으면 했던 것이지.
이전에 읽을 때 느낌을 되살린 부분도 있지만 초판과 개정판 사이에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그래서 환갑이었던 내가 칠십을 넘긴 지금 이 글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 부분도 적지 않다.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인생에서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이른 결론이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다고 인생이 꼭 실패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니 인생이라는 게 꼭 성공적이어야 할 필요는 또 무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는 그 판단 기준이 자신이겠지만, 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의 성패를 남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영 마뜩잖다. 왜 자기 인생의 성패를 남이 판단하게 만드는가.
나는 후회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후회해야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후회는 과거지향적 태도라면 잘못을 바로잡는 건 미래지향적인 일이니 둘이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가끔 굳이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내키는 데 따라 사는 삶도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 아니었을까.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삶. 그러고 보니 나는 내게 가장 인색한 모습으로 살았다.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스스로를 가둔 삶 말이다.
그 모든 게 결국은 남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게 스스로를 원칙에 가둔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이기는 했을 것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저자는 남을 의식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니 국수이고 고수가 아닌가.
하지만 그도 끝내 남의 눈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초판과 개정판 사이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있었고, 자신이 20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개정판 서문 첫머리에 실렸는데, 국회의원으로 지낸 4년은 그의 자서전이 이 책에서 실종되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