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교양인
2016년 11월 5일
나는 아내를 때리는 사람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내에게 욕하는 사람도 그렇다. 나는 매우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평생 아버지가 어머니께 손대는 걸 본 일도 없고 욕하는 것을 들어본 일도 없다. 나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아내에게 자식이 혹시 며느리에게 그런 몹쓸 짓을 저지르지나 않는지 몇 번이나 다시 물었다.
매 맞는 아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실제로 본 일은 없어 아내 폭력이 그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가정에서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에서도 아내 폭력에 대한 강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 미처 몰랐던 것이고,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매 맞는다는 게 무엇인가? 매라는 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아랫사람을 훈육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이다. 그러니 매 맞는 아내라면 잘못을 저질렀거나 아랫사람이라는 뜻일 것인데, 정말 그런가? 아내 폭력이 아내의 잘못 때문에, 혹은 아내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인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남편이 폭력의 이유로 내세우는 매 맞을 짓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아내 폭력을 당하고 있는 조사 대상자의 56.5%가 말대꾸를 꼽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강한 편견이 들어있다. 혹시 남편이 말대꾸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남편이나 아내나 동등한 인격체이니 (동등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서로 자기 의견을 밝힐 수 있다. 그런데 왜 남편의 말은 의견이고 아내의 말은 말대꾸이어야 하는가? 결국 의사 표현이란 남편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고, 이는 남편과 아내가 결코 동등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손대는 것도 욕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그건 어머니가 아버지와 동등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지혜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식들 보는 앞에서 아버지에게 말대꾸한 일이 없었다. 두 분만 있을 때는 어땠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각이 달라도 집안일은 결국 어머니 생각대로 흘러갔다. 두 분만 있을 때 뭔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처럼 어머니가 지혜로우셔서 자식들 앞에서 아버지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이 평안한 것이었고, 나도 그런 아내를 만날 수 있기를 꿈꿨다.
그런데 그건 남편을 대하는 아내만의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내를 대하는 남편 또한 그래야 한다. 아니 남편이나 아내를 가릴 것 없이, 심지어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인격을 가진 존재라면 당연히 그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여성에게만 그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여우처럼 지혜롭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 나 자신을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설령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하자. 잘못하면 모두 맞아야 하는가? 그런 논리라면 아내에게 잘못하는 남자도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말대꾸에 이은 아내 폭력의 사유로는 스트레스, 술, 분노 처리 미숙을 꼽는다. 그것 자체가 이유가 될 수도 없지만, 그것 말고도 그 대상이 왜 늘 아내이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내 폭력의 문제는 안 때릴 수 있는데 왜 때리는지 묻는 게 아니라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폭력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관계라는 인식은 현실의 심각함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얇고 낮고 가볍다. 우리의 일상은 젠더로부터 파생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가부장제는 공기일지 모른다. 그러니 여성주의를 ‘남혐’으로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요즘 그런 장면을 내보냈다간 당장 범죄를 정당화한다고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예전에는 싫다는 여성을 쫓아다니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때로는 가두기까지 하는 걸 격렬한 로맨스요 순수한 사랑인 것으로 포장했다. 그러니 아내 폭력이 범죄인지도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내 폭력은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같은 상황에서 어떤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어떤 남편은 그렇지 않으니 아내 폭력은 사회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또한 사적 영역에서 일어났으니 사회문제로 여길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살인, 강도, 절도로 인해 시민이 1퍼센트 이상 피해를 보았다면 그것이 사회문제가 되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 내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그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아내 폭력은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긍정적, 진보적 가치이지만 인권이 가족주의와 경합하게 되면 여성 인권과 아내 폭력은 부차적인 일이 되고 만다고, 그래서 이것을 가족문제로 묶어 사적 영역에 가둬놓고 외면한다고 개탄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 아내가 숨지면 과실치사가 적용되지만,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 되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그렇게 비논리적인 결론과 그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아내 폭력은 방치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심각하지만, 그 결말이 가족 해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성 대부분은 가족은 해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더구나 그것이 자녀 학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아내 폭력을 고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 처벌보다는 치료와 교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이고.
저자는 50여 명에 이르는 아내 폭력 피해자와 인터뷰하면서 여성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구타당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자존감, 수치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당한 폭력을 참아야 하고, 참을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참을만한 자신만의 특수한 경험으로 축소한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자신이 당한 아내 폭력을 함구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자녀뿐만 아니라 가해자 입을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책을 읽어가면서 가장 분노했던 건 아내 폭력으로 아내가 떠나자 그 폭력이 자녀 학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분풀이 삼아 자녀를 학대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떠난 아내를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니 인면수심도 이만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아내 폭력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비가 되어 어떻게 자녀를 학대한다는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건 아내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멀쩡하다는 것이다.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때로 주변의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와 같은 남성 중심의 공동체적 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여성이 개인성, 시민성을 획득하는 문제는 곧 가족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어왔다. 아내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려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기본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다. 그런데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인가?
“현재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은 남편의 폭력으로 가족이 파괴되기 때문에 가정 폭력이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뒤집어 보면 가족은 무조건 소중하다는 생각, 혹시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해체되면 안 된다는 가족 유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토록 극심한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족이 빨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 실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 여성들이 폭력 가정을 떠나지 못해서 가정 폭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재의 가족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피해자, 가해자, 사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토록 지켜야 하는 가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가족인가를 새롭게 질문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은 근절되기 힘들다.”
결국 안 된다는 말 아닌가.
저자는 아내 폭력은 치료와 교정은커녕 처벌로도 바로잡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해체가 답일 수 있으니 가족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이 권고가 정말 그렇기 때문인지 그만큼 피해가 막심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평소 친여성적 활동을 벌여온 사회운동가나 언론조차도 때리는 남편도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며, 가족으로부터 신고당한 구타 남편들이 느끼는 배신감을 치유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는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남성 중심적 언설이 만연해 있으니 저자가 느끼는 절망감과 그 절망감에서 비롯된 이런 권고를 이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