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두원
부키
2020년 7월 20일
아들이 교회 고등부 수련회에 갈 때 아내가 주방 봉사자로 따라갔다. 어차피 얻어놓은 휴가를 중등부 수련회로 반 쓰고 반이 남아서 밥할 때 조금 도와주고 그늘에 누워 책이나 읽을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한창 먹성 좋은 고등부 아이들과 교사들까지 줄잡아 백 명이 넘는 인원에게 밥해 먹이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빡셌다. 어디 세 끼뿐인가, 간식에 야식까지. 부엌일 잠깐 도와주고 그늘에 누워 어쩌니저쩌니했던 건 야무진 꿈이었다. 한 끼 해결하고 돌아서면 다음 끼를, 그것도 자정 무렵까지 만들고 치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날 부엌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불 앞이 내 차지가 되었고, 그래서 시키는 대로 볶고 굽고 튀겼다. 해 보니 그것도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덜 익히거나 태워서 내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거듭하는 중에 솜씨가 나날이 발전해 나중엔 불 앞에서 하는 일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때로는 중고등부에서, 때로는 청년부에서 수련회 주방 봉사자로 7년인가를 버텼다. 아마 90년대에 정릉교회 교회학교를 거친 이들 중에 내가 해준 닭튀김이며 돈가스를 먹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튀김은 재료가 뭐든 맛있다. 그런데 그것도 잘 튀겨놓아야 그렇지, 자칫하면 기름을 잔뜩 먹어서 눅눅하고 느끼하거나 아니면 새카맣게 태우기 일쑤였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 적절한 시간을 찾아낸 후 딱 그만큼 튀겨냈다. 나중엔 시계가 따로 필요 없이 소금 알 두어 개 떨어뜨려 보고는 적절한 상태로 튀겨낼 수 있었다.
튀김은 ‘겉바속촉’이라야 제맛이 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슷하게 튀겨내기는 했어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남들이 다 만들어준 걸 튀기기만 했을 뿐이니 말이다. 언젠가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다시 그 많은 분량의 튀김을 만들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해 책을 뽑아 들었다.
“튀김이란 고온의 기름에 식재료를 넣어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튀김의 정의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튀김은 이와 같은 가열식 조리법 중에서도 건식 조리법에 속한다고 말한다. 튀김의 제일 조건은 역시 기름이다.
“기름은 식물성 기름과 동물성 기름으로 나뉜다. 기름은 식용 유지로 분류하는데, 유는 올리브유, 해바라기유 같은 기름을, 지는 돈지, 우지 같은 지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유는 액체 상태이고 지는 고체 상태이지만 팜유나 코코넛유는 상온에서 고체 상태이다. 튀김은 보통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다. 동물성 유지는 포화지방산이 많아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때문에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튀김이 바삭해지려면 식재료에 수분 함량이 적당해야 한다. 너무 많으면 눅눅해지고 너무 적으면 겉이 탄다. 그래서 튀김옷을 입혀 수분을 쉽게 배출하는 구조를 만든다. 재료를 고온으로 가열하면 재료 표면에서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가 부풀어 올라 무수히 많은 구멍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다공질 구조 때문에 튀김이 바삭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공질 구조를 좀 더 확보하기 위해 빵가루를 튀김옷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밀가루 반죽은 상당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온의 조리 과정에서 이 수분이 기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열에너지를 흡수하며, 그 결과 튀김옷이 뜨거운 기름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하지만 빵가루는 수분 함량이 적기 때문에 열에너지 흡수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건조한 빵가루는 자칫 바삭하다 못해 타버릴 우려가 있다.”
결국 내가 튀겨낸 닭튀김이나 돈가스는 내 솜씨 덕분이 아니라 튀김옷 덕분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튀김 과정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아니다. 온도와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튀김이 제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금을 몇 알 던져 넣어 튀김에 적절한 온도를 맞췄지만, 저자는 그것보다 좀 더 확실한 기준을 알려준다.
“반죽을 조금 떼어 기름에 떨어뜨렸을 때 가라앉지 않고 표면에서 지글거리면 200도 이상 과열된 상태이며, 바닥에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르면 150도 정도로 조리하기에 너무 낮다. 중간까지만 가라앉았다가 곧바로 떠오른다면 170도 정도로 튀김 하기에 적당하다.”
나는 튀김의 대표적인 음식인 돈가스가 서양요리인 포크커틀렛이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것인 줄 알았다. 그게 꼭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저자는 그보다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때 국력 신장을 위해 선택한 정책의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맹렬하게 서구화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체격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책으로 우유와 육식을 장려하였다. 하지만 오랜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육식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자, 입맛에 맞도록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그중 하나가 돈가스이다. 육류를 튀겨 잡내를 없애고 고소한 풍미까지 더한 것이다.”
이후로도 튀김이 고소한 풍미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13세기 유럽 요리책에 생선튀김을 비롯한 다양한 튀김 요리가 등장한다. 당시 유럽은 사순절 같은 특별한 기간에 육식을 금했는데, 육식의 즐거움을 대신할 방편으로 찾아낸 것이 튀김이다. 이들은 생선이나 채소를 양념해 반죽 상태의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었다. 이렇게 하면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기름이 만들어내는 고소한 풍미까지 가미되어 육류를 대신할 훌륭한 요리로 주목받았다.”
저자는 탕수육은 저렴한 부위를 사용하는데, 튀김옷을 입혀 내면 고기의 품질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고소한 풍미가 저렴한 고기 맛을 덮는다는 것이니, 튀김이라면 구두를 튀긴 것이라도 맛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서양의 튀김은 튀김옷이 두꺼워 바삭한 식감이 덜할 뿐 아니라 기름이 속 재료까지 스며들어 다소 느끼한 편이어서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튀김옷을 되도록 얇게 만들고 빨리 튀겨내는 기술을 개발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내겐 튀김은 일식집 튀김만 한 게 없다.
튀김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프라이드치킨 아닌가. 저자는 거기엔 흑인 노예들의 슬픔이 깃들었다고 설명한다.
“초창기 프라이드치킨은 아메리카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백인 농장주들이 먹기 좋은 닭의 가슴살과 다리를 먹고 나서 남은 날개나 목뼈가 노예들의 몫이 되었는데, 그들은 이 부위를 조각낸 후 튀김옷을 입혀 바싹하게 튀겨 뼈까지 먹을 수 있게 하였다. 게다가 더운 날씨의 미국 남부에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변 두 가지. 아이스크림 튀김과 에어프라이어.
“아이스크림 튀김은 아이스크림 표면에 카스텔라 가루나 빵가루를 묻혀 얼린 뒤 밀가루, 달걀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 튀김옷만 튀겨질 정도로 빠르게 조리한다.”
“에어프라이어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튀김 효과를 낼 수 있는 조리 기구이다. 별도의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식재료에 함유된 기름만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지방과 열량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래서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떨어지는데, 표면에 식용유를 약간 바르면 식감과 풍미가 풍성해진다.”
읽다 보니 별 책을 다 읽는다 싶으신가? 더위 탓이려니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