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08.11 (월)

by 박인식

우리는 모두 여섯 식구입니다. 30대인 막내 과장부터 70대인 저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더구나 막내는 미혼 여성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모인 것이지요. 이 식구들이 집 두 채에 나눠 삽니다. 여성을 배려하자면 집을 따로 얻어야겠지만, 그러자면 집을 세 채 얻어야 하니 저로서 상대 회사에 그것까지 요구하는 건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체코 회사에서 현장 체재에 관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술 자문 계약을 맺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과 함께 사는 건 영 다른 일입니다.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지내다 보니 합숙하는 현장에서는 대체로 충돌이 많이 일어나더군요. 제가 처음 합숙 현장에서 일한 게 1983년이었습니다. 합숙소가 사무실에 붙어있다시피 했습니다. 한 십 미터나 떨어졌을까요. 출퇴근에 시간 쓸 일이 없으니 시간 여유가 더 생기지 않을까 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단해지더라는 겁니다. 피곤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일과 휴식이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출퇴근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집에서 다니면 회사 일과 집에서의 생활이 분리되니 피곤이 풀리는데, 합숙 현장에서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피곤이 누적되더란 말입니다. 결국 몇 달 버티지를 못하고 민가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현장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지기도 했고 상주할 직원 전원이 자기 역할을 찾아간다 싶어 저녁 먹고 잠깐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할지, 생활비는 어떻게 분담할지, 식사 당번은 어떻게 정할지. 지난 열흘 생활하며 모두 느낀 바가 있어서인지 어려움 없이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지금까지 아침 준비와 설거지, 저녁 설거지는 제가 했습니다. 나이 들어 아침잠이 없고 설거지 시원치 않게 하는 꼴 두고 보지 못하는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후배들이 속셈을 모르겠습니까. 결국 두 사람씩 세 조로 나누어 저녁 준비와 설거지를 맡도록 했습니다. 아침은 지금까지 했던 대로 제가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있는 거 늘어놓는 게 대부분이고 딱히 준비한다고 할 것도 없는 일이지요. 써놓고 나니 대단한 일 같습니다만.


때로는 말보다는 그런 행동이 훨씬 설득력 있는 의사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한 열흘 그렇게 지내다 보니 역할 분담이 자연히 이루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이걸 우리 후배들이 알까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사실 제가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소질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잔뜩 어질러진 것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나면 쾌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지요. 어제는 다들 나간 사이에 대청소하고 창문 활짝 열어놓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는데 행복이 뭐 별거냐 싶은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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