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08.17 (일)

by 박인식

영국, 프랑스, 독일로 대표되는 중부 유럽 국가는 대체로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요. 선진국이기도 하고 경제 규모나 개인 생활 수준으로도 우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이에게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혜인네가 사는 동네에는 독일 음대로 유학하러 온 학생들이 많은데요, 예전과 달리 방학 때만 되면 모두 집에 가기 바쁘답니다. 불편해서 못 살겠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왜 독일을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만 동쪽으로 오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어떻습니까?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드세요? 아마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모두 동유럽 국가이고,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예전의 소련 위성국이었던 나라들이지요. 그러니 선진국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체코는 어떤 줄 아십니까? 인당 GDP 등수를 보면 우리나라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체코 사업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사실 놀랐습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소련 위성국가라는 기억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몇 번 출장 올 때도 그런 걸 느꼈지만 요즘은 그동안 내가 체코에 대해 편견을 가졌구나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우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감각이 저희와 상당히 다릅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휴가를 뒤로 미루지는 않더군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 회사로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사업 착수를 앞두고 의사 결정을 내릴 책임자부터 실무 책임자까지 모두 휴가를 떠나 누구와 업무를 협의해야 하는지 난감했습니다. 현장 책임자는 상주가 당연한데 상주하지 않는 걸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제가 처음 일을 배우던 40년 전에 우리를 지도했던 외국인 기술자들은 반드시 10주마다 집에를 다녀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니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그때 집에 다녀오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대립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상주하지 않고서도 현장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곳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아직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실무자들은 1주일씩 번갈아 오겠다니, 숙련이 필요한 일을 일주일마다 바뀌는 사람과 어떻게 끌어나가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는 화상회의가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화상회의를 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건 특별한 일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그렇게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회의에서 올 사람이 안 와서 의아해하면 랩탑 꺼내놓고 하나씩 불러내더군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회의 소집하는 메일에 링크가 붙어있어서 이게 뭔가 했더니 바로 화상 접속용이었던 겁니다. 과연 제가 그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뭔가 불편하기 때문인데, 지금으로서는 딱히 이것 때문이라고 할만한 게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서울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편리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바로 송금시스템이지요. 요즘은 앱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계좌이체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면 계좌번호가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QR코드를 이용한 송금시스템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은행 앱에서 송금요청 QR코드를 만들어 상대에게 보내면 상대가 이를 자기 앱으로 인식시켜 송금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성한 QR코드를 상대에게 보내는 방법에는 아무 제한이 없습니다. 메신저든 소셜미디어든 상대가 이를 인식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저희는 주로 카톡을 이용해 보내는데요, 이렇게 하니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정보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주 간편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능이 있는데 저만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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