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아범이 월요일에 두 번째 독창회를 갖습니다. 첫 번째 독창회에 함께 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는데, 마침 독일에 출장 갈 일도 있고 해서 날짜를 맞췄지요. 엊저녁 모처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미 사십 중반입니다. 성악가로 사는 삶의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이 많아질 나이이지요.
2010년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노래를 시작한 이후로 16년째 성악가로 살고 있습니다.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에서만 12년째이지요. 600번째 공연이 몇 번 남지 않았네요. 무대에 오르는 게 직업인데도 공연을 앞두고는 매번 긴장하는 게 보입니다. 그래서 공연 전날은 되도록 말을 시키지 않습니다만, 이번엔 공연만 보고 바로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잔했습니다.
혜인 아범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 잘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다더군요. 학교교육도, 신앙교육도 큰 숙제라고. 제가 볼 땐 잘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학교교육도 그렇지만 요즘 들어 신앙교육도 어느 게 옳은 건지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바른 신앙인으로 키울 수 있는지 고민이 된답니다. 교회에서 강조하는 신앙이 과연 바른 신앙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고.
아들 내외가 아이들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을 때 이름에 ‘지혜 혜(慧)’를 넣어서 혜인, 혜원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사는 동안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그렇기는 했어도, 저 또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으면서도,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롭게 사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니 언제부턴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좋은 어른을 만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오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다 알 수도 없고 다 옳은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유야 백만 가지도 넘지요. 그래서 혜인이 혜원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를 만나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서 그 누군가를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게 돕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편만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힘 쏟고 있는 신앙교육이 과연 그와 같은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간혹 신앙교육의 목표가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교회에 열성적으로 봉사하는 교인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아닐까,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놓으려는 건 아닐까, 더 나아가 교회의 힘을 키우려는 저의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담당하는 교역자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신앙은 상식과 함께 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일부는,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지,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회의 공적이 되어 손가락질받는 것이지요.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도 자식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 신앙교육 프로그램에 의문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부모 자식이라 해도 생각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앙이나 신념에 대한 건 더욱 조심스럽지요. 그래서 되도록 그런 이야기는 피합니다. 물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 못하는 건 아닙니다마는, 그래도 신앙의 동지라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내일 카를스루에 대학 암석실험실 담당자와 만나 실험계획을 의논해야 합니다. 이미 협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그동안 있었던 일을 확인하는 정도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와 저녁에 있는 혜인 아범의 독창회를 즐길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공연을 많이 보기는 했어도 독창회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기대가 큽니다. 내일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