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09.22 (월)

by 박인식

오래전에 잘츠부르크에서 밀라노까지 기차를 타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로젠하임에서 바꿔타야 했는데, 출발부터 늦더니 계속 늦어져서 결국 기차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일단 내려서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 기차표를 받았는데, 글쎄 좌석 요금을 다시 내라지 않습니까. 아니 연착으로 기차 놓친 것도 못마땅했는데 요금을 더 내라니 얼마나 열받았겠습니까. 제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고 급기야는 뒤에 앉아있던 매니저까지 출동했습니다.


사정 설명을 하고 이게 그 정확하다는 독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한마디 보탰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아무튼 추가 요금 없이 좌석을 배정받았습니다. 나름 아내 대접한다고 1등석을 끊었는데 그냥 빈자리에 앉던지 좌석요금을 내라니 열받아서 소위 야지를 놓은 거였지요.


알고 보니 독일에서 기차가 늦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제시간에 운행되면 오히려 놀랄 정도라나요. 오늘도 무려 40분이나 늦게 출발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카를스루에역에 내려서 두루 구경하며 걸어도 될 시간이었는데, 내려서 그 비싼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다행히 약속 시간엔 늦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면 넉넉할 줄 알았던 회의가 서로 궁금해하는 걸 확인하다 보니 두 시간이 다 되어갔습니다. 실험실 안내하는 것도 건성으로 보고 뛰다시피 나와 중앙역으로 가는 전차를 찾았습니다.


어느 걸 타야 하는지 몰라 전차를 기다리던 인도 커플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알려주겠다면서 함께 타지 않겠습니까. 한 번 갈아타야 했거든요. 얼마나 친절하던지.


그런데 가만 보니 얼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은 아니고. 그래서 대뜸 케랄라에서 왔냐고 물었지요. 깜짝 놀라더군요. 외국인이 난데없이 자기 고향을 물으니 왜 안 놀랐겠습니까. 딱 맞췄거든요.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서 내가 그 동네 출신 엔지니어하고 십년 넘게 일했다고 했습니다.


인도는 워낙 큰 나라여서 지역마다 인종도 다르고 말도 다릅니다. 케랄라는 남부지역인데, 얼굴색이며 억양이 아주 유별납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돌아왔지요. 그래도 속으로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친구들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빚 받은 셈 쳤습니다.


다행히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기차는 제시간에 왔네요. 이제 혜인 아범 독창회가 열리는 비스바덴극장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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